“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이사 42,3)

어느 시인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합니다.

하느님께서 생명의 숨을 불어 넣어 주신 우리 인간 생명의 가치가 세상 그 무엇에도 비길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인간은 한편으로는 너무 나약해서 손끝에 작은 가시 하나만 박혀도 속수무책이 됩니다. 생선을 먹다가 가시가 목구멍에 걸리는 경우에는 어떨까요?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자꾸만 가시 이야기를 예로 들게 되는데, 어쨌든 여기서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제아무리 꽃보다 아름답고, 우주선도 쏘아 올리는 대단한 인간일지라도, 인간은 가시 하나에 무장해제 당할 정도로 나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나약한 인간이기에 짊어질 수밖에 없는 것들이 세상에는 참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질병’입니다. 환절기에 자주 걸리는 감기에서부터 시한부 인생을 선고하는 말기 암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질병과 함께 인생을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픈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병상의 큰 고통 중에 있는 환자들은 때때로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아픈 것보다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을 거야.”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죽을 만큼 아픈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을까요? 만일 죽는 편이 더 낫다면, 어떻게 죽을 수 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 오래 전부터 많은 논란이 벌어져 왔습니다. 바로 ‘안락사’라는 주제를 통해서 말이지요.

☆ 중병에 걸려 너무나 고통스러운 사람에게 ‘안락사’를 허용할 수 있나요?

★ 탈출기 20장 13절에는 “살인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죽음을 초래하는 행위는 모두 이 계명을 어기는 셈이 됩니다. 그런데 죽음을 초래하는 행위들 가운데 그럴싸한 가명을 쓰고 우리를 혼돈스럽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안락사입니다.

안락사에는 물리적 또는 화학적 방법으로 직접 죽음을 초래하거나, 또는 환자에 대한 일반 의료 행위를 중단함으로써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어떠한 경우든 안락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¹⁾

고통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사람을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죽게 하는 행위나, 그 행위를 묵인하는 것. 이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의 창조주, 살아 계신 하느님께 대한 존중에 크게 어긋나는 일입니다. 한마디로 이것은 살인 행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 과거 가톨릭교회는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를 구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마치도 가톨릭교회가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것처럼 혼돈을 야기 시킬 수 있기에, 오늘날 생명윤리학에서는 이러한 구분을 하고 있지 않으며,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모든 형태의 안락사를 반대합니다.

☆ 아무리 치료해도 비용만 크게 들고 위험하며, 기대한 효과를 내지 못하는, 중환자에 대한 의료 기구의 사용은 중지될 수 있나요?

★ 몇 년 전 우리 곁을 떠나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일화가 떠오릅니다. 당시 추기경님께서는 생사를 넘나드는 병환의 고통 중에 계셨지만 인공호흡기를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평소 의료진들에게 말씀하시길,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이 자연스럽게 다할 때까지 당신은 그저 내어 맡기시겠노라며, 억지로 생명을 연장하고픈 집착이 없다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추기경님은 고통스런 병환 중에서도 아름답데 당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시면서, “감사합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고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추기경님의 이러한 모습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지금까지 큰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중환자를 치료함에 있어서 크게 식별을 해야 할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치료가 과연 합당한 치료인가, 아니면 ‘지나친 치료’인가가 바로 그것이지요. ‘생명 집착’에 기인한 지나친 치료는 거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과다한 의료 기구의 사용을 중단하는 것은 환자가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막을 수 없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환자가 자격과 능력을 가졌을 경우에는 환자 본인이 중단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보호자가 이를 결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언제나 환자의 타당한 소원과 정당한 이익이 존중되는 가운데 결정이 내려져야 합니다.

☆ 요즘 쟁점이 되고 있는 ‘연명 치료 중단’제도화란 무엇이며, 이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은 무엇인가요?

★ 최근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무의미한 연명 치료의 중단을 제도화할 것을 정부에 권고하고, 의료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겠다는 결의를 나타내면서 이에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무의미한 연명 치료의 중단’은 임종을 앞둔 환자들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연장시키는 비윤리적인 치료를 하지 않도록 법제화하자는 것으로, 결국 치료 중단 자체 보다는 연명 치료의 시행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 보다 전문적인 의료진의 참여와 윤리적안 결정이 이루어져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자는 것이 주요 목표입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연명 치료 중단의 제도화를 반대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제도화가 인간적이고 품위 있는 죽음을 지향한다는 본래 취지를 살리기보다, 조문에 관한 자의적 해석으로 안락사를 유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가톨릭교회가 연명 치료 중단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 사회에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가 뿌리 내리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화가 이루어질 경우, 약용될 소지가 크다는 데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톨릭교회는 제도화 대신 전문 지식과 양심을 갖춘 의료인과 원목자, 그리고 생명윤리학자 등으로 이루어진 병원윤리위원회를 구성되고, 위원회가 연명 치료 중단과 관련한 개별 사례들을 신중하게 다루도록 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죽음이 임박한 것으로 여겨지더라도, 환자에게 일반적으로 베풀어야 하는 치료 행위를 중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가령 영양 및 수분 공급은 선택 사항이 아닌 필수 사항이며, 진통제 사용의 경우 인간의 존엄성에 도덕적으로 부합하는 사랑의 행위라는 입장을 교회는 고수하고 있습니다.

<최재영 시몬 신부/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연구팀 담당 사제(디다케 2013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