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시술 의사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물의를 빚고 있다. 

　대전지방법원 제3형사부는 태아를 낙태한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4명에 대한 항소심에서 6월 26일 1심대로 선고유예 및 형 면제 판결을 내렸다. 태아의 생명보호를 위해 낙태를 금지하는 형법의 규범력은 유지되고 있지만 낙태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또한 가볍게 볼 수 없고, 사실상 낙태가 용인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피고인들에게만 무거운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의사들은 2008년부터 3년간 약물 부작용과 노산의 위험 등을 걱정한 임신부들 부탁을 받고 태아 63~140명씩 낙태한 혐의로 기소됐다.

　생명운동 관계자들은 이번 판결이 1953년부터 유지돼온 형법 제27장 제269조(낙태의 죄)를 무력화한 것은 물론 낙태죄 처벌이 합헌이라는 2012년 8월 헌법재판소 결정을 뒤엎은 무책임한 판결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상습적으로 불법 낙태를 해온 의사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오심이라는 것이다.

　생명수호에 뜻을 둔 프로라이프 단체들로 구성된 프로라이프 연합회는 5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이번 판결은 생명존중의 역사를 거꾸로 돌린 반생명적 오판이라며 강한 이의를 제기했다.

　프로라이프 연합회는 성명에서 △이번 판결은 향후 불법 낙태에 대한 정당한 법적 억지력도 소멸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고 △많은 사람들이 낙태를 용인한다고 해서 낙태 시술 의사를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은 시류에 편승한 오류이며 △생명권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위 가치인 여성의 자기결정권를 보호하기 위해 낙태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결정은 현행법마저 부정하는 매우 심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로라이프 의사회 차희제(토마스) 회장은 "법관의 판단이 사회적 가치 기준을 훼손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판사의 재량권 행사가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한도를 넘을 수는 없는 것"이라면서 "의사들이 병원을 찾은 임산부들에게 수입을 목적으로 낙태를 조장하는 것은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열섭(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총무) 신부는 "이번 판결은 살인에 무죄를 선고한 꼴로,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사법부의 폭력"이라며 "낙태를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은 당연히 폐지해야 하지만, 당장은 모자보건법의 낙태 허용 조항과 형법의 낙태죄 처벌 규정만큼이라도 철저하게 적용해야 낙태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