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임선형

세상 일에만 몰두하는 딸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고민했는데 얼마나
쓸데없는 걱정이었는지 


패션 디자인을 공부한 둘째딸은 TV에서 어떤 배우가 무슨 가방을 들었는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며칠이 지나도 기억을 합니다. 길을 가는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을 가리키며 어느 연예인이 어떤 드라마에서 입었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관심도 없을 뿐 아니라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시오"라는 복음 구절을 떠올리며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과는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본성이 머리를 쳐들었습니다. 딸이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저는 입을 굳게 다물어 버리곤 했고 부녀간 대화는 계속되지 못하곤 했습니다. 

　자녀 교육 방법에 한계를 느끼며 답답해졌고 이미 성장해버린 딸이기에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눈물 쏙 빠지게 고생하며 세상을 배우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곤 했습니다. 

　아내와 딸과 함께 미사를 참례하고 돌아오는데 딸이 앞에 앉은 아가씨가 명품 가방을 들고 있었으며 옷과 가방이 얼마나 조화로웠는지, 그 사람을 관찰하는 데 정신이 팔려 미사 내내 분심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다음부턴 그 성당에 가지 말아야 되겠다!"하고 말했지만 아내는 제 말은 무시해버리고 딸과 함께 맞장구를 치고 있었습니다. 무슨 색상이었느니, 어떤 디자인이었느니 하면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아내도 어떤 상표를 명품이라고 부르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고 유명 상표가 뭔지도 모르는 게 분명한데 딸의 관심에 의도적으로 맞장구를 치면서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에 저는 완전히 압도당해 한 마디도 거들지 못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승용차 안에서 아내가 어떻게 딸과 한마음이 되어 가는지를 살펴보면서 혼자 속으로 '명품 엄마, 명품 아내'하고 되뇌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시집간 딸이 모처럼 친정에 놀러와 자연스럽게 큰딸과 함께 셋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됐습니다. 아내는 다른 일로 외출하고 없었고 무엇이든 논리정연하게 이야기를 하는 제 습관대로 두 딸과 삶에 대해서, 세상을 사는 가치관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했습니다. 이야기 중에 언제나 지적하고 옳고 그름의 논리를 펴는 제 습관 때문에 둘째딸의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저는 즉시 어제 아내가 딸과 대화할 때를 떠올리며 뱉은 말을 다시 정돈했고 다행히 우리는 더 진지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둘째딸이 모처럼 속내를 털어놨습니다. 엄마를 보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 내어주는 삶을 얼마나 깊게 배워왔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지를 쉬지 않고 이야기할 때 새로운 딸을 하나 더 얻은 듯 기뻤습니다.

　철저히 세상일에만 몰두하는 딸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 얼마나 쓸데없는 걱정이었는지 알게 됐습니다. 가슴 깊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하며 앞으로 엄마처럼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시집간 큰 딸 하나만 예수님 사람으로 만든 것이 부족했나 봅니다. 아내는 둘째딸까지 말없이 예수님 사람으로 만들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손세공·배금자 부부
(포콜라레 새가정운동 전 책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