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 긴 피정을 마치는 날이었습니다. 아내는 자동차 없이 피정에 참석한 한 자매를 태우고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갑자기 기분이 확 나빠졌습니다. 

　"뭐야! 왜 만날 나한테 시키는 건데…."

　아내는 당황해하며 이미 약속을 했다고 했습니다. 

　입을 한발이나 내밀고 서울까지 몇 시간을 운전해야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앞으로 당신 마음대로 하면 당신이 곤란해지거나 말거나 그냥 나도 내 마음대로 할 거라고 통보했습니다. 
　아내는 미안해했고 내 의사를 미리 물어보지 않고 결정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용서를 청했습니다. 말미에 남편이 착하고 너그러운 사람이라고 믿고 살아왔기에 내린 결정이었다고 한마디 변명을 덧붙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내가 왜 화가 나는 걸까?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강요당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당당하게 승자가 되었습니다. 내 생각이 옳았고 부부는 이렇게 서로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면서 당당해졌습니다.

　어쩌다 다른 사람을 도와줘야 하는 상황이 생기고 의견의 차이가 있을 때마다 저는 "혼자 천국 가셔요, 당신이 강요하는 것을 내가 마지못해 한다고 해서 내가 천국 가는 것 아니잖아"하고 일축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당당하게 그 의견 차이를 정돈하고 한두 해가 지났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나름 사랑을 실천해야 할 때 인간적으로 하기 싫은 본능을 다스리는 훈련을 계속해갔습니다. 며칠 전 묵상 중에 불쑥 카나의 혼인잔치가 떠올랐습니다.
　아내가 "함께 태우고 가자"고 한 말처럼 성모님이 "포도주가 없구나!"하고 말씀하셨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성모님께서 기적을 일으킬 힘이 없으신 것처럼 아내도 힘이 없었습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께 사랑의 실천을 강요하신 것처럼 아내도 저에게 사랑의 실천을 강요했습니다.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망설이면서도 결국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첫 기적을 일으키셨고 덕분에 훌륭한 잔치가 되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 대한 완전한 신뢰가 있었던 것처럼 아내도 나에게 신뢰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성모님과 예수님 중 누가 틀리지 않았듯 아내와 저 역시 누가 옳고 틀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동안 당당했던 내 생각을 스스로 내려놔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흉내 낼 수 있도록 은총을 주셨음에 감사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