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임선형

   우리 부부는 남극과 북극에서 온 사람처럼 철저히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보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똑같이 생각하고 같은 방법으로 사는 것처럼 여긴다는 생각이 들면 깜짝 놀랍니다. 그렇게 한 사람처럼 봐줄 때마다 이제는 '내'가 아니라 '우리'로 살아야 함을 더 깊게 깨닫곤 합니다.

　며칠 전 복음에서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는 구절을 읽다가 '너희를'이란 구절에서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수 없이 읽었을 이 구절의 '너희를'이란 복수를 '너'라는 단수로 읽어왔음을 깨달았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는데 이제껏 혼자 애를 쓰고 있었음을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모처럼 쉴 수 있는 주일이었습니다. 둘째 딸이 기다렸다는 듯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엄마, 아빠랑 차를 마시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는 맛있는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딸은 프랑스 분위기가 풍기는 카페에 가자고 했습니다. 딸이 원하는 카페 골목에 갔지만 딸은 마음을 바꿔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리자고 했습니다. 미사 후 딸은 집에서 저녁을 먹자고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의견은 제각각이었지만 각자 의견을 고집하지 않았고 아빠는 딸을, 딸은 엄마의 입장을 먼저 배려하는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미사를 드리고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큰 건물에 걸린 '오페라 유령' 광고판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 나이되면 오페라도 보러 다니고 맛있는 것도 찾아다니며 살아야 하는데…. 이제라도 여유 있게 문화생활도 하면서 살아야겠어."

　딸이 큰 소리로 깔깔대고 웃었습니다. 

　"그거 아무나 하는 건 줄 알아, 아빤 안 돼! 그냥 생긴 대로 사세요."

　운전하다 말고 울컥했습니다. 문화생활보다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식들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의 가치를 배워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딸을 사랑하기 위해 카페 골목을 갔고, 딸은 부모를 사랑하기 위해 마음을 바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 가족이 종일 사랑 실천 겨루기를 한 하루이구나' 싶었습니다. 

　아내도 딸도 아빠도 서로를 배려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무엇을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았고, 어떻게 하느냐가 정말 중요했습니다. 우리 부부도 고집을 내려놓았고 딸도 질세라 먼저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아직도 딸이 고급 승용차로 멋진 카페 골목을 함께 다닐 백마 탄 왕자를 찾고 있다는 말을 할 때마다 우리는 매번 "꿈은 이루어진다"고 부추겨 주지만 우리 부부의 격려는 딸의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는다는 것을 압니다. 이 날은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각자 방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만 피정에 다녀온 듯 마음이 충만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따라 오너라"하고 부르실 때 '나'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함께 부르셨습니다.

손세공, 배금자 부부 (포콜라레 새가정운동 전 책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