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대전교구 가정사목부

ㆍ작성자	관리자
ㆍ작성일	2013-03-18 (월)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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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부부이야기](32) 곰 같지만 사랑 많은 아내 ”

▲ 그림=임선형

"많은 지식보다 따뜻한 마음이 우선이고
일 잘하기 보다 사랑을 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내는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열고 시간도 넉넉히 내어줍니다. 남들을 도와주다가 해야 할 일이 밀리면 밤늦게까지 부엌에서 달그락거릴 때가 있습니다. "집안일이나 제대로 하지…. 왜 분수에 맞지 않게 남을 도와준답시고 피곤하고 힘들게 사느냐"고 물으면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아내가 시간을 적절하게 배분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회생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감각과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단정해버리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에게 "제발 신문도 좀 보고, 뉴스도 들으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공부 좀 하라"며 부족함을 지적해줬습니다. 아내는 "한가하게 신문이라도 읽을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혼잣말을 뱉으며 다른 방으로 가버리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답답한 곰 같은 아내와 살고 있다고 투정을 했습니다.

　어느 공휴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도 힘겹게 사는 한 이웃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느라 부엌을 잔뜩 어질러놓고 시간이 늦었다고 서둘러 나가는 아내에게 뒷정리는 신경 쓰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아내가 외출한 뒤 팔짱을 끼고 어질러져 있는 부엌을 바라봤습니다. 돌아와 저녁준비를 하기 위해 허둥댈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늦은 저녁을 먹게 될 것이고 다음날은 얼굴이 퉁퉁 부을 것이고….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잔소리를 늘어놓느니 도와주는 게 좋겠다 싶어 설거지를 하고 전기밥솥에 쌀을 안치고 아내가 해온 것처럼 시간 예약 단추를 눌렀습니다.

　신기하게도 아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내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가슴이 콩콩 뛰었습니다. 아내보다 더 많은 학식과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우쭐대며 살아왔는데….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살아온 것 같았습니다. 무슨 일이든 말끔하게 처리하고 말도 군더더기 없이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언제나 저는 혼자 쓸쓸히 서 있었습니다. 반면 말도 잘할 줄 모르고 하는 일마다 뭔가 아쉬움을 남기는 아내 곁엔 사람들이 모여들어 따뜻함이 넘치곤 했습니다.

　많은 것을 알고 또 일을 잘하는 것이 세상을 살면서 유용하지만 '많은 지식 보다는 따뜻한 마음이 우선이고 일을 잘하는 것보다는 사랑을 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많은 지식을 쌓기 위해 흘려보낸 아쉬운 시간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아내를 위한 작은 사랑의 행위는 삶의 지혜를 가져다 줬습니다. 언제나 어수룩하게 보이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지혜롭게 해결해온 아내에겐 숨은 사랑의 실천들이 쌓여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사랑은 지혜를 낳고 지혜는 빛으로 다가와 모두를 사랑하는 힘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즘은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아내를 위해 식탁에 앉아 그날의 독서와 복음을 읽어주기도 하고, 세상 소식도 들려주곤 합니다.

손세공 배금자 부부
포콜라레 새가정운동 전 책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