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임선형

 

  도움을 부탁하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내와 가끔 다를 때가 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가 겪고 있는 '사랑의 갈증' 때문에 야기된 문제를 만나면 "부모 자식 간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아내 의견과 "하느님의 부재에서 오는 문제이므로 인간을 창조하신 그분의 사랑부터 배워야 한다"는 제 의견이 충돌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깊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신앙은 있지만 대화가 부족한 사람도 있고, 많은 대화를 하지만 신앙이 부족한 경우도 있음을 알게 되고 같은 결론으로 도움을 주게 됩니다. 

　어느 날 한 부인에게 탈선한 아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부인을 만난 아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모와 자식 간에 많은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구체적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반면에 저는 하느님 사랑을 설명하며 "예수님께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신앙생활의 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긴 대화 끝에 제 의견으로 결론이 나자 믿음을 바탕으로 한 내 생각이 옳았다고 내심 우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저녁미사에 함께 참례하면서 하루를 마감하기로 했습니다. 둘이서 차를 타고 성당으로 가는데 제 휴대전화 벨이 울렸습니다. 비상이었습니다. 거래처에 정전이 발생하면 전기 기술자인 저에겐 초비상입니다. 

　함께 미사에 갈 수 없게 되자 아내는 그냥 하느님께 맡겨 드리고 미사를 드린 후에 가면 안 되냐고 했습니다. 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아내는 혼자 성당으로 걸어 들어갔고 저는 황급히 거래처로 달려갔습니다. 

　매일 미사를 참례하고 성체를 모시는 것으로 예수님을 만나며 살아가는데 오늘은 영혼의 양식을 굶어야 하는구나 싶어 '예수님 빨리 상황을 끝내고 어디서든 성체를 영할 수 있도록 기적을 베풀어 주세요'하고 말씀드리고 성호를 그었습니다.

　또 휴대전화 벨이 울렸습니다. 문자였습니다. "전기 들어왔어요, 오지 마세요." 

　자동차 전용 도로에 들어섰지만 우리 성당으로 유턴했습니다. 퇴근시간인데 길이 뻥 뚫려 있었습니다. 이 시간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성당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지금 내가 성체를 모시러 가는 것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기특하다고 하실 것이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성당에 들어가니 영성체 행렬이 시작되었습니다.

　미사 후에 집으로 돌아가는데 아내는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고, 저는 휴대전화를 열어 문자를 보여 주었습니다. 아무 말도 안하고 빙그레 웃는 아내는 분명 속으로 '거봐, 내 말 듣고 안 갔으면 고생 안 해도 되잖아'하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모처럼 내가 아내보다 믿음이 강했다고 하루종일 우쭐했는데…. 절대로 추월할 수 없는 것이 아내의 믿음이다 싶어서 또 승복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겨루기에 져도 이렇게 기쁜 것은 우리의 겨루기가 그분을 향해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