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대전교구 가정사목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2세 교황)
사랑이 없다면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일 수 없고,
또한 사랑이 없다면 가정이 살아남고 성장하여
인간 공동체로서 완성될 수가 없습니다 (가정공동체 18항)
       
 
혼인과 가정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3-12-20 (금) 09:51
ㆍ조회: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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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례만 받으면 성가정일까? ”


주일학교 교사뿐 아니라 천주교 신자라면 성가정이라는 말을 흔히 듣게 됩니다. 그런데 성가정이라는 말을 어떤 의미로 이해하고 사용합니까? 많은 분들이 가족 모두 세례를 받은 가정알고 이해하고 있는데요. 과연 그럴까요? 가족 모두 세례만 받으면 하느님께서 성가정이라고 인정해 주실까요? 만약 세례 받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면 레지오 마리애 같은 신심 단체에도 가입하고, 주일학교 교사나 다른 봉사 활동을 하면 어떨까요? 교회 내의 모든 신심 단체에 가입하고, 모든 봉사 단체에서 온갖 봉사활동을 하더라도 기본이 안 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성가정이란 무엇일까? 우선 성가정은 거룩한 가정을 의미하는데, 거룩하다는 말은 다른 것들과 구별된다.’는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가정이라 불리려면 다른 일반 가정과는 어떤 면에서 구별되어야 할까요? 사실 세례 받은 것 자체로 이미 구별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아무런 약속 없이 받은 게 아니라 모든 죄와 마귀의 유혹과 마귀의 행실을 끊어 버린다고 성세서원(聖洗誓願, 세례를 받을 때에 하느님에게 하는 약속)을 한 후에 받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죄와 유혹과 마귀의 행실을 끊어버렸다면 그것만으로도 다른 이들과 구별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바라보는 모든 이들이 저 사람은 우리와 다르다고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 부활과 구원에 대한 믿음, 하느님 나라와 영원한 삶에 대한 믿음을 서원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믿는 사람들만의 특징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간절하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필요하다면 다른 것들을 포기할 줄 압니다. 특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데 장애가 된다면 기꺼이 포기합니다. 하느님 라가를 희망하는 사람은 이렇게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는데 장애가 되는 것을 기꺼이 끊어 버리는 특징을 지닙니다.

 

또 한 가지, 성경에서 드러나는 성가정의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순명입니다. 소녀 마리아는 목숨을 걸고 처녀 수태라는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였고, 성 요셉은 임신한 약혼녀를 받아들였으며, 예수님께서도 십자가형마저 기꺼이 받아들이셨습니다. 성가정은 나자렛 성가정을 본받아 하느님 뜻에 순명하는 모습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런데 순명이란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내가 원하는 것보다 언제나 더 좋은 것을 주고자 하신다는 믿음을 지닐 때, 우리는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기꺼이 나눔을 실천 할 수 있습니다.

성가정은 어느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런 노력 없이 시간만 지나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한 사람이 성화되어야 합니다. 가족 모두가 동시에 성화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많은 가정에 일치를 저해하는 사람, 하느님께서 주신 십자가라고까지 생각되는 가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정에 성화된 한 사람이 있다면 나머지 가족들도 하나둘씩 거룩함에 물들어 갑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가족 모두 성화되어 성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성화의 과정은 자신이 먼저 이루어야지, 다른 가족에게 요구하며 잔소리를 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납니다.

먼저 한 사람이 성화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준비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우선 목표 의식을 지녀야 합니다.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을 위해 공부하는 사람과 그냥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은 차이가 납니다. 분명한 목표가 있는 사람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힘들어도 조금 더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화를 원하는 사람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할까요? 그것은 단순히 하느님 나라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는 어떤 면에서 신기루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하느님 나라에 어울리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며 끊어 버려할 것과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을 찾아서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목표는 있는데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이 없으면 절대로 목표를 달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다른 이들을 함부로 판단해서 핀잔을 주거나 남들에게 험담을 하는 습관을 버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나쁜 점을 말하지 않고 좋은 점을 찾아 열심히 칭찬할 것을 결심하고 실천해 가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구체적인 계획에 따라 노력할 때에 우리는 조금씩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럼 계획을 세웠으니 이제 열심히 노력만 하면 될까요? 그러지 않습니다. 자신은 바른 길로 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목표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획을 실천하면서, 끊임없이 본래의 목표에 맞게 나아가고 있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게으른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침에 6시 이전에 일어나겠다고 결심했는데, 530분에 일어나서 TV만 본다거나 컴퓨터 게임을 한다면 본래의 취지에 벗어난 것이 됩니다. 무엇을 위해서 일찍 일어나고자 했는지, 그리고 그 시간을 얼마나 의미 있게 활용했는지 성찰하지 않으면 무의미한 자기만족에 그칠 수 있습니다.

, 그런데 지금까지 설명한 것을 실천해 본 사람들만 깨닫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한계와 은총의 필요성입니다. 목표와 계획이 없는 사람은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세워서 노력하다 보면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는 것이 생기지요. 이럴 때 우리는 은총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사 때마다, 기도할 때마다 하느님께 구체적으로 은총을 구하며, 그 은총에 힘입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이렇게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계를 극복했음을 깨달으면서 은총을 체험하고 하느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하느님께 감사한 마음이 클수록 우리는 더 큰 사랑을 실천하게 됩니다. 나에게 고통을 주던 가족 이웃과 동료를 향해 마음을 열게 되고, 용서가 가능해지며, 더 큰 포용과 나눔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 사랑 덕분에 가족과 형제들도 변화되어 성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제가 지금도 만나는 친구 중에 위의 단계를 거쳐 성가정을 이룬 경우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어릴 때부터 성당에 다니기는 했지만 친구들과 놀러가기 위해 미사를 빠질 때도 있는 평범한 수준의 신자였습니다. 이 친구가 십년 전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그 친구는 하느님보다는 재미있게 노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지만 저를 만나는 횟수가 늘어가면서 지난날을 통회하고 올바른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 단계씩 이 친구를 이끌어 주었습니다. 삼사 년 정도가 지난 후에 이 친구를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모든 악습을 끊었고, 옳지 못한 장소에 가지 않았으며, 나쁜 곳으로 이끄는 친구들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친형님과 친누님들에게 사랑을 베풀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형제들도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관심도 왕래도 없었던 형제들이 서로를 염려하며 챙겨주기 시작하다가 모두 냉담을 풀고 성당 근처로 이사를 가서 여러 단체에서 봉사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얼굴입니다. 이기심과 미움으로 찌들어 있던 형제들의 얼굴에 미소와 온화함이 꽃피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하느님 나라의 삶을 살고 있다는 티가 팍팍 납니다. 마치 천사의 얼굴처럼 변화되었습니다. 온 가족이 이리하게 된 것은 당연하고, 이 일치를 바랑으로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성가정의 일치는 방향이 외부로 향하게 합니다. 마치 공부를 못하는 아이가 자기 혼자 공부하기도 벅차고, 조금 잘하는 아이는 친구에게 아는 것을 알려주는 걸 꺼려하는 데 비해, 잘 하는 아이는 옆의 친구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사랑으로 일치해 있는 성가정은 이웃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 줄 수 있고, 그래서 다른 가정과 구별됩니다.

여러분은 주일학교 교사이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모범을 보이며 가르쳐야 하는 사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 사명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신이 성가정을 이루고 하느님 나라의 삶을 살면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하느님 나라로 초대해야 합니다. 공부해야 할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시기에 자신을 희생하여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해 봉사하는 여러분이 사랑과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면 하느님께서 더 큰 은총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며, 더 많은 축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이형전 루카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가정사목부 담당 사제(디다케 2013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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