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대전교구 가정사목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2세 교황)
사랑이 없다면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일 수 없고,
또한 사랑이 없다면 가정이 살아남고 성장하여
인간 공동체로서 완성될 수가 없습니다 (가정공동체 18항)
       
 
아름다운 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5-28 (수) 09:41
ㆍ조회: 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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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아버지께 ”
 

 
*** 사랑하는 아버지께 ***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리고 나서 가슴에 한으로
남아있던 말, 그 말을 엄마에게만은 자주 해 드리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평생 들은 적도 없고 한 적도 없는
말이었으니까요. 전화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사랑한다고
말씀드리자, 엄마는 아무 말이 없으셨습니다.
잠시 후 엄마도 제게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지요.

그 이후 몇 년이 흐른 지금도 우리 두 사람은
사랑한다는 말을 하며 전화를 끊습니다.
아세요, 아버지? 그 말에 아버지도 함께 한다는 것을요.

엄마는 아버지 곁에 가는 그날까지
건강하게 살아야 자식들 걱정 끼치지 않는다고 하시며
식사도 잘 하시고 운동도 규칙적으로 잘 하고 계세요.
하기는 아버지께서 중풍으로 누워계시던 3년 동안에도
그러셨지요. 엄마가 건강을 잃으면 자식들이 힘들다고요.

아버지!
부모가 되어 살면서 순간순간 깨닫는 게 있어요.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우리 부모님도
그러셨겠구나, 아이들을 야단치고 난 후에는
우리 부모님도 마음이 아프셨겠구나,
아이들에게 좋은 일이 생길 때면
우리 부모님이 더 기뻐하셨겠구나!’
그게 철이 드는 건가 봐요, 아버지!

자신감이 뚝 떨어져 의욕이 없을 때
아버지 생각을 하면 일어설 수 있었어요.
나를 자랑스러워하셨던, 나를 보물처럼
아껴주셨던 아버지의 딸이었으니까요.
결정을 내리기 힘든 갈등 상황에서도
자주 아버지를 떠올렸어요.

아버지처럼, 제 아이들에게 저도
그런 존재가 되면 좋겠어요.
자주 넘어지는 인생길에 부르기만 해도
무릎에 힘이 생기는 ‘아버지’라는 그 이름.

아버지!
제가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했는지
예전에 제가 썼던 글로 대신할게요.
아버지 살아계실 때 썼던 글을
돌아가신 지금에서야 보여드리네요.
지금은 학교를 떠났지만,
아버지의 딸이었기에 행복한 교사로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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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딸로 산다는 것은 ***

몇 년 전, 전임 교에서 3학년 담임을 하며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 교사와 학부모와의 관계를
넘어선 아름다운 만남이었다.

3월 초, 소라 엄마의 첫 편지로 인해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시험관 아기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병원에 다니는 일 말고는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있고,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아서 학교 행사에도 참여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해해 주시고 소라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소라 엄마를 안심시키는 내용의
편지를 간단히 써서 보냈다. 그 이후로 메일을
자주 주고받는 관계로 이어졌다.
몸이 많이 피곤해 보였던 날은
여지없이 소라 엄마의 따뜻한 글이 배달되었고,
그 사랑의 기운으로 피곤은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 많은 메일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이 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분이신 것 같아요.”

난 지금도 그 글을 읽던 순간을 생각하면 많이 부끄럽다.
내가 정말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교사였을까?
오히려 그 이후에 나는 조금씩 그런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소라 엄마의 칭찬은 오히려 나에게
‘아픈 채찍, 감사한 채찍’이 된 것이다.

나는 다섯 살 때부터 초등학교 교사가 되려고 했다.
아니, 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교직에 계셨던
아버지의 뜻대로 내 인생을 맡겨버렸다.
불문과에 가고 싶었던 뜨거운 열정을
가슴 깊이 숨긴 채 나는 교육대학에 진학을 했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가슴앓이를 한 5년 정도 하고 난 후,
서서히 그 마음도 엷어졌다. 아이들과 함께 있음에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면, 아마도 나는 오랜 시간을
학교에 머무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교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로운 것인지
몸으로 보여주신 아버지가 계셨기 때문이다.

“교사는 절대로 아이들을 미워할 자격이 없다.
아이 교육을 위해 야단을 치고 화를 낸다 해도,
그 다음 날 아침에는 남는 마음이 없이
그 아이를 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도하기 어려운 한 명을 포기하고
나머지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그것은 훌륭한 교사의 모습이 아니다.
교사는 모든 아이를 가슴에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아버지의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난 지금까지 하루 이상 아이들을 미워한 적이 없었다.
아마도 자동조절장치가 내 속에 들어간 모양이다.
아침이면 일찍 출근해서 창문을 활짝 열고
아이들을 맞이하며 웃는 내 모습이 어여쁘게 느껴진다.

내가 훌륭한 교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셨을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의 딸이 되어 산다는 것은
가슴 설레게 감사한 일이다.
- 희망용인교육 2005년 봄호 -
<아동문학가 채수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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