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대전교구 가정사목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2세 교황)
사랑이 없다면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일 수 없고,
또한 사랑이 없다면 가정이 살아남고 성장하여
인간 공동체로서 완성될 수가 없습니다 (가정공동체 18항)
       
 
혼인과 가정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6-18 (수) 09:38
ㆍ조회: 1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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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정부부처럼 살면 안 되나요? ”
[궁금해요]

저는 50대 초반 기혼 여성입니다. 자녀들은 딸만 둘인데 이미 출가해서 현재는 남편과 둘이 살면서 함께 성당도 다니고 등산도 하면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남편은 저에게 여러 면에서 충분히 만족스러움을 주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남편은 딱 한가지, 제가 스킨십이나 성관계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아쉬워 합니다. 저도 언제부터인지 그리고 왜 그런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스킨십이나 성관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때로는 교회사에 나오는 “동정부부들처럼 살면 안 될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신부님, 그러면 안 되는 건가요?



[대답입니다]

자매님께서 현재 남편과의 성관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자신도 알지 못하는 어떤 원인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면 그 원인을 찾는 것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더욱이 그것이 신앙에 의한 영향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부부가 성관계를 갖는 시간은 부부의 일생 중 0.1%도 안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것에 의해 99.9%의 부부관계가 좌우될 수 있답니다.

실제로 상담을 하다보면 많은 분들에게서 자신들이 지닌 우울이나 분노, 부부관계, 자녀와의 관계, 심지어는 신앙생활에서 오는 불만족까지도 성적인 문제에 의해서 발생하기도 하고 반대로 그것에 의해서 치유가 시작되기도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몇 해 전 미국에서 행해진 조사에 의하면 신앙심이 깊을수록 성관계 후 후회감이 강하고 오히려 무신론자들의 성생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만들어지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간과한 채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 이루어지는 성생활은 하느님의 축복이며, 개인뿐만 아니라 부부관계를 행복하게 하는 필수 요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신앙인들이 하느님께서 주신 성을 잘못 이해함으로써 자신 스스로도 하느님께서 주신 축복을 누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도 그렇게 만드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제 교회 안에서 숨이 막혀 죽어가는 ‘성’에 인공호흡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성’에 대한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금기어가 아니라 오히려 시급하게 다루어야 할 주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신앙 안에 어떻게 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죄책감이 생기게 되었을까요? 아주 많은 원인들을 찾을 수 있겠으나 여기서는 두 가지 정도로만 압축해 볼까 합니다.

첫째는 ‘성덕’에 대한 편협한 이해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과거에 신앙인들은 사제나 수도자들의 기도, 극기, 희생 등과 같은 삶을 완전한 그리스도인의 모델로서 여기던 때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그들은 모두 독신자들이었고 그들의 영성을 말하면서 ‘독신’이라는 가치가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신자들 역시도 독신을 직접적으로 선택하지는 못했지만 자연스럽게 독신의 삶을 선망했고 그것을 완덕의 길 가운데 하나로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처럼 평신도 영성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했기에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이런 믿음의 체계들을 배우게 되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신앙심이 깊을수록 자신을 꾸미거나 배우자와의 성적인 관계에 대해서 불편해 하는 모습으로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둘째는 음욕과 관련된 교회의 가르침으로 인해 생긴 두려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세상이 방탕에 빠져있을 때 교회는 “음란한 행위는 하느님을 모욕하는 행위이며 지옥 불에 떨어지는 중죄이면서 동시에 완덕에 이르는 삶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는 가르침을 주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 안에서 음란한 행위와 정상적인 성관계가 구분되지 않은 채 무의식적으로 ‘성’은 두려운 것, 피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한 신부님이 복사단 친구들과 중국집에 갔답니다.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꼬마 친구가 얼른 달력을 뒤집어 놓길래 왜 그러느냐고 묻자 꼬마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수영복 입은 사진이 걸려있어서 신부님 보실까 봐 돌려놓았습니다.”

칭찬을 해주었어야 할까요? 신부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기특하긴 하지만 나이가 19세가 넘은 것은 본당신부님인데 좀 상황이 바뀐 것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가끔씩 어떤 신자들은 신부님, 수녀님들을 ‘성이 없는 사람’ 또는 ‘중성’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독신을 살아가는 많은 사제 수도자들 스스로도 자신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잘 살지 못하고 자신들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몸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들에는 남모르게 수치심을 느끼거나 아직 영적으로 덜 영글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신자들 역시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들 스스로를 중성이라고 소개하거나 성적인 생각들이 드는 것에 당황스러워하기도 합니다. 더욱이 신자들에게는 그것이 거룩한 생활에 대한 바람과 만나면서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그런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려 하기보다 일방적으로 배우자에게 금욕을 강요하거나 면박을 주는 경우도 생깁니다.

자매님, 교회는 사랑을 가르칩니다. 구체적으로 조건 없는 사랑을 주신 예수님을 본받으라고 가르칩니다. 사제와 수도자의 독신은 조건 없는 사랑을 주신 예수님을 더욱 철저하게 따르기 위해서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고 그것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신자들 역시 예수님의 그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하도록 불리움을 받았지만 ‘독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결혼 생활을 통해 그 몫을 살게 됩니다. 따라서 누군가는 독신을 통해서 누군가는 성을 통해서 자신을 내어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의 구체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성관계입니다. 그래서 성관계는 하느님께서 혼인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신 행복으로 가는 길, 축복의 길입니다. 스킨십과 성관계는 단순히 육체적인 관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친밀한 부부 사이의 관계를 전제합니다. 그러한 관계가 전제되지 않을 때 성관계가 불행의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성관계 안에서 각자가 지닌 성숙의 정도가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성관계를 통해 타인에게 자신을 줌으로써 기쁨을 얻는 것이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성관계를 통해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기 위해 상대를 이용합니다.

자매님, 신앙의 선조들은 성관계를 언급하면서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소명’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말하자면 창조를 기억하는 ‘주님의 날’은 신자들이 금욕을 행하는 날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창조를 부부간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이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선, 나눔, 봉사, 기도와 더불어 성관계 역시 그런 대열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며 행복과 완덕을 향한 삶으로 나아가는 여정에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 문의 : 이메일 info@catimes.kr 을 통해 김인호 신부님과 상담하실 수 있습니다.



김인호 신부 (대전가톨릭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 교수)
 
 
 
 
[가톨릭신문/제2898호,제28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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