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대전교구 가정사목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2세 교황)
사랑이 없다면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일 수 없고,
또한 사랑이 없다면 가정이 살아남고 성장하여
인간 공동체로서 완성될 수가 없습니다 (가정공동체 18항)
       
 
공개보도자료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1-18 (수) 15:03
ㆍ조회: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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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화>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제45차 세계 평화의 날 ”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제45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2012년 1월 1일)

젊은이들을 위한 정의와 평화의 교육

1.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주시는 선물인 새해를 맞아, 저는 모든 이에게 커다란 믿음과 사랑의 마음으로 인사를 드리며, 우리 앞에 놓인 이 시간에 정의와 평화가 확고히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새해를 맞이하여야 하겠습니까? 시편 130(129)편에는 매우 아름다운 장면이 나옵니다. 시편 저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신앙인은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6절) 주님을 더 기다립니다. 굳건한 희망으로 주님을 기다립니다. 주님께서는 빛과 자비와 구원을 가져다주시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다림은 선택받은 백성의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참모습을 바라보며 어떠한 고난에도 굴복하지 말라고 하느님께서 가르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2012년 한해를 이러한 확신에 찬 믿음으로 맞이하기를 바랍니다. 사실, 지난 한 해 동안 사회와 노동계와 경제를 뒤흔든 위기로 좌절감이 깊어졌습니다. 이 위기의 뿌리는 무엇보다 문화적이고 인간학적인 것입니다. 마치 어둠이 우리 시대를 뒤덮어 한낮의 빛을 환히 보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어둠 속에서도 인간의 마음은 시편 저자가 말한 새벽을 끊임없이 기다립니다. 이러한 기다림은 특별히 젊은이들에게서 간절하고 두드러지기에, 저는 젊은이들을 생각하며 그들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사회 공헌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니다. 저는 제45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로 “젊은이들을 위한 정의와 평화의 교육”이라는 주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젊은이들이 이상과 열정으로 이 세상에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담화는 부모와 가정, 교육자, 그리고 종교,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책임자들에게도 향해 있습니다. 젊은이들과 그들의 관심사에 동참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존중하는 것은 단순히 유용한 것만이 아니라 정의롭고 평화로운 미래를 세우기 위한 사회 전체의 첫째 의무입니다.

따라서 젊은이들에게 삶에 대한 긍정적인 가치관을 전하고, 선에 봉사하며 살겠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직접 떠맡아야 할 과제입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표명하는 관심사는 확고한 희망으로 미래를 바라보려는 그들의 열망을 보여줍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많은 걱정을 하고 삽니다. 더욱 깊이 있게 현실을 직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교육을 받고자 열망합니다. 가족을 이루고 안정된 일자리를 찾는 어려움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인간답고 우애 넘치는 사회를 이룩하기 위하여, 정치, 문화, 경제 분야에 이바지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갖습니다.

이러한 불안과 그 바탕에 있는 이상에 사회의 모든 차원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는 희망과 신뢰로 젊은이들을 바라봅니다. 교회는 그들이 진리를 찾고 공동선을 수호하며,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일들”(이사 42,9; 48,6)을 바라보도록 격려합니다.

교육 책임자

2. 교육은 삶에서 가장 흥미롭고도 어려운 모험입니다. 라틴어 educere에서 나온 서양의 ‘교육하다’라는 말은 젊은이가 충만한 성장으로 나아가도록 자기 자신을 벗어나 실재를 만나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어른과 젊은이의 자유, 이 두 자유의 만남으로 촉진됩니다. 이는 제자의 책임을 요구합니다. 제자는 현실 지식에 대한 지도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는 교육자의 책임도 요구합니다. 교육자는 언제든 자신을 내어 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연유로,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그저 규칙과 정보를 전달하는 자가 아닌 진정한 증인이 필요합니다. 매우 폭넓은 삶의 경험으로 다른 이들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는 증인이 필요합니다. 증인이란 자기가 제안하는 그 삶을 먼저 실천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평화와 정의에 대한 참 교육은 어디에서 이루어집니까? 무엇보다도 가정에서 이루어집니다. 부모가 첫 교육자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사회의 기본 세포입니다. “바로 가정에서 자녀는 건설적이고 평화롭게 더불어 살 수 있게 하는 인간적 가치와 그리스도교 가치를 배웁니다. 바로 가정에서 자녀는 세대 간 연대, 규칙 존중, 용서, 환대를 배웁니다.” 1) 가정은 우리가 정의와 평화를 익히는 첫 학교입니다.

우리는 가정과 삶 자체가 계속 위협 받고 종종 해체되기도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흔히 가정의 책임을 다할 수 없게 하는 노동 여건, 미래에 대한 걱정, 정신없이 돌아가는 바쁜 삶, 단순한 생존만이 아니라 적절한 생계 보장을 위한 잦은 이주, 이 모든 것은 자녀에게 가장 소중한 것, 바로 부모가 곁에 있어 주는 것을 어렵게 합니다. 부모는 자녀와 함께 하면서 그 삶의 여정에 더 깊이 동참하고 연륜으로 얻은 경험과 확신을 전해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과 확신은 함께 시간을 보냄으로써만 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부모들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모들이 모범적인 삶을 통하여, 자녀들이 진정한 정의와 평화의 유일한 원천이신 하느님께만 희망을 두도록 격려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교육 기관의 책임자들에게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교육 기관의 책임자들은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이 언제나 존중받고 소중히 여겨지도록 보장하기를 바랍니다. 모든 젊은이가 자신의 소명을 깨닫고 하느님께서 주신 능력을 개발하도록 도와주십시오. 또한 교육 기관의 책임자들은 모든 가정에 자기 자녀들이 그들의 양심과 그들이 믿는 종교 원리에 상충되지 않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십시오. 

모든 교육 현장은 초월자와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는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대화와 결속과 경청의 자리가 되고, 거기에서 젊은이들은 개인의 능력과 내적 부요를 인정받고 형제자매들을 존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날마다 이웃을 향한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데에서 기쁨을 맛보며 더욱 인간답고 형제애 넘치는 사회 건설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데에서 오는 기쁨을 배우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요청합니다. 모든 가정과 교육 기관들이 그들의 교육 권리와 의무를 이행하도록 구체적인 도움을 주십시오. 부모들이 그들의 과업을 수행하도록 적절한 지원을 해 주어야 합니다. 정치 지도자들은 어느 누구도 교육의 기회를 거부당하지 않고 모든 가정이 자기 자녀를 위하여 가장 적합하다고 여기는 교육 구조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보장하여 주십시오. 생활비를 벌려고 헤어져 있는 가족들이 다시 함께 살 수 있도록 힘써 주십시오. 젊은이들에게 모든 이의 선익을 위하여 진정으로 봉사하는 투명한 정치상을 보여 주십시오.

저는 또한 언론계가 교육에 고유한 기여를 해 주도록 호소합니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대중 매체는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대중의 사고를 형성해 가는 특별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대중 매체는 젊은이 교육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교육과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교육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커뮤니케이션은 인격 형성에 좋든 나쁘든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 또한 다른 이들에게 적용하는 높은 기준에 따라 살아갈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큰 책임이 있습니다. 자신의 자유를 지혜롭게 선용할 수 있는 힘을 찾아야 합니다. 젊은이들도 정의와 평화 교육을 비롯한 자신의 교육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진리와 자유 교육

3.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인간은 진리보다 무엇을 더 간절히 바라는가?”(Quid enim fortius desiderat anima quam veritatem?) 2)  한 사회의 인간다운 모습은 이 억누를 수 없는 물음을 생생하게 간직하는 교육에 많이 달려 있습니다. 참으로 교육은 도덕적 정신적 차원을 포함하여 인간의 궁극 목적과 그가 속한 사회의 선익에 초점을 맞춘 전인적 양성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가르치려면 맨 먼저 인간이 누구인지 알고 인간의 본성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 저자는 그를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며 이렇게 묵상합니다. “우러러 당신 손가락으로 빚으신 하늘하며 굳건히 세우신 달과 별들을 바라보나이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시나이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시나이까?”(시편 8,4-5). ‘인간이 무엇이기에?’는 우리가 물어야 하는 근원적인 물음입니다. 인간은  마음속에 무한한 것에 대한 갈망, 곧 진리에 대한 갈망을 마음에 품고 있는 존재입니다. 어떤 부분적인 진리가 아니라 삶의 의미를 밝혀 줄 수 있는 진리를 갈망합니다.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헤아릴 수 없이 고귀한 선물이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정하면, 우리는 자기 자신의 드높은 존엄을 찾고 모든 인간 개인의 불가침성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육의 첫걸음은 인간 안에서 창조주의 모습을 알아보도록 배우는 것이며, 그에 따라 모든 인간을 드높이 존중하고 다른 이들이 이 지고의 존엄에 부합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다운 인간 발전은 모든 차원의 인간 전체와 관련되어 있다” 3)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초월적 차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경제적이든 사회적이든,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어떤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인간이 희생될 수 없다는 사실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은 오로지 하느님과 맺는 관계 안에서만 인간 자유의 의미도 이해하게 됩니다. 인간이 참된 자유를 누리도록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과제입니다. 참된 자유는 아무런 제약도 없는 방종이 아닙니다. 또한 자기를 절대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이 자신을 절대시하면, 곧 그 무엇이나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으면,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진리와 모순되어 자유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오히려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특히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관계적 존재입니다. 참된 자유는 하느님을 떠나서는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자유는 매우 소중한 가치이지만 부서지기 쉬운 것입니다. 자유는 오해되고 오용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육 활동에 특히 해로운 장애는 우리 사회와 문화에 널리 퍼져 있는 상대주의입니다. 이 상대주의는 아무것도 확정적인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오직 자신과 자신의 욕망을 궁극적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마치 자유처럼 보이는 상대주의는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고 각자 자기를 자신 안에 가두어 버리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감옥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대주의적인 지평에서는 참 교육이 불가능합니다. 진리의 빛이 없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든 사람은 실제로 자기 삶의 가치와 그 삶이 이루는 관계를 의심하고, 또 다른 사람과 함께 무엇인가를 이룩하고자 하는 노력의 타당성도 의심하게 됩니다.” 4)

자유를 행사하기 위하여 인간은 상대주의적 지평을 넘어서서 자신에 대한 진리와 선과 악에 대한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자기 양심의 깊은 곳에 있는 법을 발견합니다. 이 법은 자신이 부과하지는 않았지만 복종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 양심의 소리는 선을 사랑하고 실천하고 악을 회피하도록 자신을 부르며, 자신의 선행과 악행에 책임을 지라고 합니다. 5)  따라서 자유의 행사는 자연 도덕률과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자연 도덕률은 그 특성상 보편적이고 모든 인간의 존엄을 드러내며 인간의 근본적 권리와 의무의 기초가 됩니다. 결국 자연 도덕률은 정의롭고 평화로운 공존의 기초를 이룹니다.

그러기에 자유의 올바른 사용은 정의와 평화 증진의 핵심입니다. 자유 행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과 더불어 존재와 생활 방식이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존중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존중에서 상호 신뢰, 건설적 대화 능력, 늘 받기만 바라고 베풀기는 어려운 용서를 할 수 있는 힘, 서로 주고받는 사랑,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 희생을 할 각오가 생겨납니다. 이 요소들이 없다면, 평화와 정의는 아무런 내용도 없는 그저 빈말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정의 교육

4.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는 효용과 이윤과 물질적 소유라는 기준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만연하여, 선의를 내세우면서도, 인간의 가치, 인간 존엄과 인권의 가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는 정의의 개념을 그 초월적 근원과 분리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정의는 단순히 인간의 협약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무엇이 정의로운지를 결정하는 것은 실정법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심오한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통합적 인간관이야말로 정의의 개념을 계약이 아니라 연대와 사랑의 지평 안에서 찾을 수 있게 해 줍니다. 6)
 
합리주의적 개인주의적 경제 원리 위에 세워진 현대 문화의 일부 사조가 정의의 개념을 사랑과 연대에서 분리시켜 그 초월적 근원에서 단절시켜 버렸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습니다. “지상의 도시는 권리와 의무의 관계로 세워질 뿐만 아니라, 감사와 자비와 친교의 관계를 통해서 더 커지고 더 튼튼해집니다. 사랑은 언제나 인간 관계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이 세상의 정의를 위한 모든 노력에 신학적 구원적 가치를 부여합니다.” 7)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마태 5,6). 하느님과 그들 자신과 형제자매들과 모든 피조물과 이루는 올바른 관계에 주리고 목말라하기 때문에 그들은 흡족해질 것입니다.

평화 교육

5.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만도 아니고, 적대 세력들 사이의 균형을 보장하는 데 그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의 선익 보호, 사람들 사이의 자유로운 의사소통, 사람들과 민족의 존엄성 중시, 형제애의 끊임없는 실천 등이 없이는 평화는 지상에서 실현될 수 없습니다.” 8)  평화는 정의의 열매이고 사랑의 결과입니다. 평화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진정한 평화라고 믿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 십자가를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당신과 화해시키시고, 우리를 서로 갈라놓는 분열의 장벽을 허무셨습니다(에페 2,14-18 참조). 그리스도 안에는, 사랑으로 화해한 한 가족만이 있습니다.

그러나 평화는 거저 받는 선물이 아니라 우리가 떠맡아야 할 과업입니다. 진정한 평화의 일꾼이 되려면, 우리는 스스로 교육하여, 연민, 연대, 협동, 형제애, 능동적인 공동체 활동을 배워야 합니다. 국가적 국제적 문제들에 대한 각성에 관심을 가지고, 부의 재분배, 성장 추구, 개발 협력, 분쟁 해결을 위한 적절한 방안을 모색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모든 이를 위한 평화는 모든 이를 위한 정의의 열매입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역량과 책임에 따라 정의를 촉진해야 하는 본질적 임무를 회피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이상을 힘차게 추구하는 젊은이들에게 각별히 권유합니다. 비록 시류를 거슬러야 하고 희생이 따르더라도, 무엇이 정의이고 진리인지 알아보는 힘을 기르십시오. 인내심을 가지고 한결같이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십시오.

눈을 들어 하느님을 바라보십시오

6. 정의와 평화라는 길을 걷는 어려운 도전 앞에서, 우리는 시편 저자의 말로 이렇게 묻고 싶을 것입니다. “눈을 들어 산을 보노라. 나의 구원 어디서 오리오?”(시편 121[120], 1).

모든 이들에게,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저는 간곡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이념이 아닙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 우리의 창조주, 우리 자유의 보증인, 진정한 선과 진리의 보증인  옳은 것의 척도이시며 동시에 영원한 사랑이신 하느님께 조건 없이 돌아가야 구원을 받습니다. ……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겠습니까?” 9)  사랑은 진리를 두고 기뻐합니다. 사랑은 우리를 진리와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투신할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내기 때문입니다(1코린 13,1-13 참조).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은 사회를 위한 소중한 선물입니다. 어려움에 부딪쳐 좌절하지 마십시오. 흔히 가장 쉬운 길로 보이는 그릇된 해결책에 기대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말고 투신하십시오. 힘든 일과 희생을 직시하고, 성실과 인내, 겸손과 헌신을 요구하는 길을 선택하십시오. 여러분의 젊음을 믿으십시오. 행복, 진리, 아름다움, 진정한 사랑을 위한 깊은 갈망을 믿고 살아가십시오. 열정에 가득 찬 인생의 이 시간을 풍요롭고 충만하게 살아가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어른들에게 모범이 되고 영감을 불어넣어 준다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여러분이 불의와 부패를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그만큼 더욱더 그리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잠재력을 깨달으십시오. 결코 자기 자신만 찾지 말고 모든 이들의 더 밝은 미래를 위하여 일하십시오. 여러분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교회가 여러분을 신뢰하고, 여러분을 따르며, 여러분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여러분에게 자기가 지닌 가장 소중한 선물, 곧 눈을 들어 하느님을 바라보고 정의와 평화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합니다.

평화의 대의를 간직한 온 누리의 모든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평화는 이미 얻은 축복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추구하여야 하는 목표입니다. 더 큰 희망으로 미래를 바라봅시다. 우리의 여정에서 서로 격려합시다. 우리 세상이 더 인간답고 형제애 넘치는 얼굴을 지니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현재와 미래 세대에 대하여 공동 책임감을 가집시다. 특히 미래 세대가 평화의 겨레가 되고 평화의 일꾼이 되도록 교육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저의 성찰을 여러분에게 맡겨 드리며 모든 이들에게 호소합니다. “젊은이들을 위한 정의와 평화의 교육”이라는 이 커다란 목표를 위하여 우리의 정신적 도덕적 물질적 자원을 함께 모읍시다.


바티칸에서
2011년 12월 8일
교황  베네딕토 1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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