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대전교구 가정사목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2세 교황)
사랑이 없다면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일 수 없고,
또한 사랑이 없다면 가정이 살아남고 성장하여
인간 공동체로서 완성될 수가 없습니다 (가정공동체 18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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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8-18 (목)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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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님과 함께하는 교리 - 가정에서 하는 세 가지 말 ”



가정에서 하는 세 가지 말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교리는 가정생활, 시간과 사건들과 함께 하는 가정의 현실에 관한 일련의 묵상들을 시작하는 입구와도 같습니다. 이 들어가는 문 위에 세 가지 말이 쓰여 있습니다. 저는 이미 여러 번에 걸쳐 이 세 가지 말을 사용했습니다. 이 말들은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해도 괜찮을까요?)”,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입니다.

사실 이 세 가지 말은 가정 안에서 선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평화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줍니다. 이는 단순한 말들이지만 실천에 옮기기에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매우 큰 힘을 내포하고 있는 말들입니다. 그 말들은 수천의 어려움과 시련을 통해 집을 수호하는 힘입니다. 그들의 결핍 대신 조금씩 조금씩 집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균열들을 보게 해 줍니다.

 

우리는 그것을 일반적으로 좋은 교육이라는 말로 이해합니다. 좋습니다. 잘 교육받은 사람은 허락을 청하고 감사하다 말하고 잘못하면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좋은 교육은 당연히 매우 중요합니다. 위대한 주교인 살레스의 프란치스코는 좋은 교육은 이미 반은 거룩하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합니다. 역사 안에서 우리는 좋은 방법의 형식주의 역시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정신의 건조함과 다른 사람을 향한 무관심을 숨기고 있는 가면이 될 수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좋은 것들 뒤에 나쁜 습관을 숨기고 있다.”고 흔히 말합니다. 종교조차도 이런 위험에서 방어해야 합니다. 그것은 영적인 세속성 안에서 형식적인 준수로 떨어지게 합니다.

예수님을 유혹한 악마는 좋은 방식을 내보이고 성경을 인용합니다. 마치 신학자인양 굽니다! 악마의 스타일은 겉으로 보기에 올바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의 목적은 하느님 사랑의 진리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대로 참된 교육, 좋은 교육이라는 말을 통해 좋은 관계 양식이 선에 대한 사랑과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 안에 견고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정은 섬세하게 이런 선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첫 번째 말은 허락해 주시겠습니까?”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최대한 친절하게 부탁하려고 신경 쓸 때 우리는 가정과 혼인의 공동생활 정신을 위한 참된 요새를 세웁니다. 다른 사람의 삶 안으로 들어감은 우리 삶의 일부를 이룰 때 역시 공격적이지 않은 섬세한 태도를 요구합니다. 그것은 신뢰와 존중을 새롭게 합니다.

그러나 신뢰는 모든 것을 면제해 주지는 않습니다. 사랑은 더 깊고 심오하면 할수록 자유의 존중과 다른 사람이 자기 마음의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을 요구합니다. 이 점에 대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묵시록에서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서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3,20).

주님께서도 역시 들어가기 위해 허락을 청하십니다! 우리, 그것을 잊지 맙시다. 가정 안에서 어떤 일을 하기 전에 해도 괜찮을까요, 그렇게 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물읍시다. 잘 교육된 표현이고 사랑으로 가득 찬 표현으로 그렇게 합시다. 이것이 가정을 매우 좋게 만듭니다.

 

두 번째는 감사합니다!”입니다. 어떤 경우 우리는 마치 하나의 해방의 표지처럼 나쁜 방식과 나쁜 말들의 문화가 되고 있는 듯 여겨집니다. 우리는 공적으로도 많은 경우 그렇게 말하는 것을 느낍니다. 친절과 감사할 수 있는 능력은 마치 연약함의 표지인 것처럼 보이고 때로는 불신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이런 경향은 가정의 태중 안에서 반대를 이룹니다. 우리는 감사함, 인정하는 것에 관한 한 우리는 타협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인격의 존엄성과 사회정의는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만약 가정생활이 이런 양식을 소홀히 한다면 사회생활 또한 이런 양식을 잃게 될 것입니다. 감사함은 믿는 이들에게 신앙의 핵심 그 자체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언어를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감사할 줄 모르는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언어를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열 사람의 나환자를 고쳐주셨는데 단 한 사람만 감사드리러 돌아왔을 때 예수님의 질문을 기억합시다(루카 17,18 참조).

한번은 제가 매우 지혜롭고 선하며 단순한 어떤 노인한테서 감사함은 고귀한 영혼의 땅에서만 자라는 식물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영혼의 고귀함, 영혼 안에서 하느님의 그 은총이 우리에게 고맙다고 말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것은 고귀한 영혼의 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세 번째 말은 미안합니다!”입니다. 매우 어려운 말 맞습니다. 하지만 매우 필요한 말입니다. 부족할 때는 조그마한 틈이 그것을 원하지 않음에도 자꾸 넓어지며 깊은 구렁이 되기까지 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 안에서 가르치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기도는 우리 삶에 있어 본질적인 질문들 모두를 요약하는데, 우리는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듯이 우리 죄를 용서하소서(마태 6,12). 이런 표현들을 발견합니다. 뭔가 부족함을 깨닫는 것, 존경, 성실함, 사랑 등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는 열망이 있음을 아는 것은 용서에 대해 합당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하여 오염이 멈춥니다.

만약 우리가 미안하다고 말할 줄 모른다면 그것은 우리가 용서할 능력도 없음을 의미합니다. 미안하다고 말할 줄 모르는 집 안에는 공기, 물이 부족하기 시작하고 고여 있는 물이 됩니다. 애정의 많은 상처,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괴로움은 이 미안합니다!”라는 소중한 말을 잃어버림으로써 시작됩니다. 혼인생활 안에서 다투기도 하고, 때로는 접시가 날아다니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충고합니다. 화해하지 않고 하루를 마치지 않도록 하십시오!

잘 들어보십시오. 남편과 아내인 여러분, 서로 싸웠습니까? 자녀들과 부모들인 여러분 서로 싸웠습니까?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진정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 감정이 그날 이후로도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만약 어려분이 다퉜다면 가정 안에서 화해하지 않고 하루를 마치지 않도록 하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화해할까요? 무릎을 꿇을까요? 아닙니다. 그저 단순한 태도, 아주 작은 몸짓입니다. 그것으로 가정의 조화가 다시 돌아옵니다. 말없이 그저 단순한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해하시겠지요? 쉽지 않아요, 하지만 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통해 삶은 더욱 더 아름답게 됩니다.

 

이 세 가지 말은 가정의 열쇠와도 같은 단순한 말들이며 얼른 보아서는 웃음이 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잃어버린다면 더 이상 웃을 수 없습니다. 맞지요? 우리의 교육은 아마도 이러한 말을 너무도 소홀히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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