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대전교구 가정사목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2세 교황)
사랑이 없다면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일 수 없고,
또한 사랑이 없다면 가정이 살아남고 성장하여
인간 공동체로서 완성될 수가 없습니다 (가정공동체 18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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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8-16 (화) 09:41
ㆍ조회: 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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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님과 함께하는 교리 - 혼인(1) ”



혼인(1)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남자-여자 한 쌍의 부부에 관한 하느님의 원래 계획에 대한 우리의 묵상은 창세기의 두 가지 이야기를 살펴본 다음 이제 직접 예수님에게로 향합니다.

 

요한복음 사가는 그의 복음 시초에 카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그 혼인 잔치에 동정 마리아와 예수님, 그리고 그분의 제자들이 참석하고 있었습니다(요한 2,1-11 참조). 예수께서는 그 결혼식에 참석할 뿐만 아니라 포도주의 기적으로 잔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첫 번째 기적의 표징은 혼인의 맥락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갓 태어나는 그 가정을 위하여 마리아의 모성적 염려가 재촉한 크나큰 호감의 몸짓이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창세기를 기억하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창조의 업적을 마치시고 당신의 걸작인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여기서 이 남자와 여자와 함께 혼인 잔치 안에서 당신의 기적들을 시작하십니다. 그렇게 하여 예수께서는 사회의 걸작은 가정임을, 서로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임을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걸작인 것입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 때부터 많은 일들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그 표징은 언제나 유효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날 시간 안에서, 배우자들의 전 생애의 여러 다양한 시기들 안에서 쇄신 되는 잔치처럼 혼인에 대해 말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혼인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적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젊은이들이 혼인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많은 나라에서 별거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합니다. 한편 자녀수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부부로서든, 가정이든 함께 머무는 어려움은 점점 더 매우 빠르고 쉽게 관계를 깨뜨리게 됩니다. 그 결과를 짊어지게 되는 첫 번째가 자녀입니다. 이것을 깊이 생각해 봅시다. 별거로 인해 가장 고통을 당하는 첫 번째 희생자들, 가장 중요한 희생자들이 자녀라는 것입니다. 만약 아주 어린아이 때부터 혼인이 한정된 시간 동안의관계라고 경험하게 된다면, 무의식적으로 그 어린아이는 그렇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상, 많은 젊은이들이 취소할 수 없는 관계와 지속적인 가정에 대한 계획 자체를 포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우리가 진지하게 왜 많은 젊은이들이 혼인하고 싶어 하지 않는지에 관해 성찰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 일시적인 것(잠정적인 것)의 문화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임시적입니다. 결정적인 어떤 것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혼하기를 원하지 않는 젊은이들의 이런 문화는 오늘날 대두되는 큰 걱정거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왜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을까요? 왜 그들은 책임감 없는 동거를 더 선호할까요? 왜 세례 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혼인에 대한 신뢰, 가정에 대한 신뢰가 적은 것일까요? 만약 우리가 젊은이들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을 찾기를 원한다면 이런 것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젊은이들이 왜 가정에 대해 신뢰를 갖지 않는 것일까요?

 

경제적인 어려움만이 그 원인은 아닐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최근 수십 년간 일어난 변화는 여성 해방에 따른 움직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이 주제조차도 타당하지 않습니다. 거짓입니다. 참말이 아닙니다!

 

여성을 지배하기 원하는 남성 우월주의의 한 형태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왜 너는 그 나무 열매를 따먹었느냐?” 하고 말씀하셨을 때,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주었습니다.”라고 한 아담을 나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탓을 여자의 것으로 돌립니다. 불쌍한 여자입니다! 우리는 여성을 수호해야 합니다! 사실상 거의 모든 남자와 여자가 안정적인 애정의 확실성, 견고한 혼인, 행복한 가정을 원할 것입니다. 가정은 젊은이들 사이의 모든 만족도의 정점에 있습니다. 하지만 실수할까 봐 두려워서 많은 젊은이들이 그에 관해 생각조차 하려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임에도 신앙의 증거가 되는 유일하고 되풀이될 수 없는 계약의 표지인 성사혼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바로 이런 실패의 두려움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맞아들이는 데 가장 큰 장애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부 결합과 가정에 당신의 은총을 약속하십니다.

 

그리스도인 혼인의 축복의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는 그리스도인 부부와 가정들의 좋은 삶입니다. 성사의 아름다움을 말하기 위해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하느님에 의해 축성된 혼인은 하느님께서 세상 창조 시작부터 축복하신 남자와 여자 사이의 그 관계를 수호합니다. 그리고 부부의 삶과 가정생활 전체에 평화와 선의 근원이 됩니다. 예를 들어 초기 그리스도교 안에서 남자와 여자 사이의 관계가 지닌 위대한 존엄성은 그 당시 모든 사람에게 일상적이라고 여겨졌던 남용을 물리칩니다. 즉 온갖 구실과 굴욕적인 동기들로 아내를 쫓아낼 수 있는 남편의 권리입니다. 가정의 복음, 이 성사를 선포하는 복음은 이 관습적인 이혼(소박)의 문화를 물리쳤습니다.

 

배우자들 사이의 근본적인 평등함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씨앗은 오늘날 새로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혼인의 사회적 존엄성에 대한 증거는 바로 이 길, 이 매력적인 증거의 길, 그들 사이의 상호성의 길, 보완성의 길을 통해 설득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그러한 점에서 더욱더 요구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동등한 일에 동등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결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왜 여성들은 남자들보다 적게 받아야 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여성들도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불평등은 스캔들입니다!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동시에 여성들의 모성성과 남성들의 부성성은 무엇보다 어린이들의 유익을 위해 언제나 유효한 부요함으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 가정들의 환대의 덕은 오늘날 특히 가난, 가정의 품위를 잃게 만드는 열악한 상황들, 가정 폭력의 상황들 안에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닙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혼인 잔치에 예수님을 초대하는 데 두려워하지 맙시다. 그분을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가정을 수호해 주실 수 있도록 우리 집에 모셔 들이는 데 두려워하지 맙시다. 그리고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 또한 초대하는 데 두려워하지 맙시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안에서혼인할 때 하느님 사랑의 실제적인 표징 안에서 변화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들만을 위해 결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주님 안에서 공동체 전체와 사회 전체를 위해 혼인합니다.

 

이 아름다운 그리스도인 혼인의 소명에 대해 다음 교리에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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