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대전교구 가정사목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2세 교황)
사랑이 없다면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일 수 없고,
또한 사랑이 없다면 가정이 살아남고 성장하여
인간 공동체로서 완성될 수가 없습니다 (가정공동체 18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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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8-12 (금)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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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gjsamok.zerois.net/cafe/?gajeong.2480.
“ 교황님과 함께하는 교리 - 남자와 여자(2) ”

 

남자와 여자(2)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가정에 관한 앞서의 교리에서 저는 창세기 1장의 인간 존재의 창조에 관한 첫 번째 이야기에 관해 머물렀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 1,27).

 

오늘 저는 창세기 2장에 나오는 두 번째 창조 이야기와 함께 묵상을 하고자 합니다. 창세기 2장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다음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는 것을 읽습니다. 창조의 정점입니다. 그런데 뭔가 부족합니다. 그 후 하느님께서 사람을 매우 아름다운 정원에 데려다놓으십니다. 그가 그 정원을 돌보고 수호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창세 2,15 참조).

 

성경 전체에 영감을 준 성령께서 그 순간 여자 없이 뭔가 부족한 홀로인 사람의 모습만 시사합니다. 하느님의 생각, 남자를 바라보고 정원 안에 홀로 있는 아담을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감정을 시사합니다. 그는 자유롭고, 주인이지만 혼자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지 않습니다.” 마치 친교의 결핍과도 같고, 그에게 친교가 부족하고 충만함의 결핍처럼 보입니다. “좋지 않다.”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그에게 걸맞은 도움을 만들어주고 싶다.”(창세 2,18)라고 덧붙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모든 동물들을 생각하시고 그에게 데려다주십니다. 사람은 동물 각자에게 이름을 줍니다. 이는 피조물 위에 행사하는 인간의 주권에 대한 또 다른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것을 그 어떤 동물 가운데서도 찾아내지 못합니다. 인간은 계속해서 홀로입니다. 드디어 하느님께서 여자를 데려다주시자 사람은 기뻐 뛰며 그 피조물, 오직 그 피조물만이 자기의 일부임을 알아봅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창세 2,23).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드디어 반사, 상호성이 있습니다. 한 인격이 이를 잘 이해하기 위한 예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면 자기 앞에 다른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한 사람이 도움을 주고자 하는데 아무도 없다면 도움은 거기 그냥 있을 뿐입니다. 그에게 상호성이 없습니다. 그와 같이 인간도 그랬습니다. 그에게 자기의 충만함, 완전함에 이르기 위하여 무엇인가가 부족했습니다. 그에게 상호성이 빠져있었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복제품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창조적 몸짓에서 직접 오는 것입니다. ‘갈비뼈의 모상은 하위 또는 예속을 표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남자와 여자가 같은 본질이며 보완적이고 이 상호성을 지닙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잠든 동안 여자를 만드셨다는 사실은 그녀가 그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의 피조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또 다른 것도 시사합니다. 여자를 발견하기 위해, 다시 말해서 여자 안에서 사랑을 발견하기 위해서 사람은 먼저 그 여자를 꿈꿔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그 여자를 발견합니다.

 

땅을 맡기신 남자와 여자에 대한 하느님의 신뢰는 관대하고 진실하며 완전합니다. 그들에 대해 신뢰하십니다. 하지만 사악한 존재가 그들의 정신에 의심과 불신, 불신앙을 품게 만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잘 수호하라고 하신 계명에 불순종하기에 이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오염시키고 조화를 깨뜨리는 전능의 착란 상태로 떨어집니다. 우리 역시 많은 경우 우리 안에서 그것을 느낍니다.

 

죄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경계심과 분열이 생겨나게 합니다. 그들의 관계는 수많은 형태의 배신과 굴종, 거짓으로 속이려 드는 유혹, 치욕스럽게 만드는 횡포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폭력적인 형태에 이르기까지 함정에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역사는 그에 대한 흔적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족장들의 문화가 지닌 부정적인 남용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여자를 두 번째 계급쯤으로 여기던 남성우월주의의 많은 형태를 생각해 봅시다. 현시대 대중문화 안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상업화와 도구화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최근의 불신의 전염병, 회의주의의 전염병, 심지어 우리 문화 안에 확산되어 가는 적대감, 특히 동시에 상이성의 존엄성을 수호할 수도 있고, 친교의 내재성을 얇게 할 수도 있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계약과 관련하여 여성들의 이유 있는 불신부터 시작하여 생각해 봅시다.

 

만약 우리가 이 계약에서 비약적인 호감, 불신과 무관심에서 새로운 세대를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자녀들은 언제나 모태에서부터 그 계약에서 뿌리 뽑힌 채 세상에 오게 될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확고하고 출산을 지향하는 계약에 있어 사회적 평가절하는 당연히 모든 사람에게 있어 상실입니다. 우리는 혼인과 가정을 그 명예로움으로 되돌아가게 해야 합니다! 성경은 아름다운 것 하나를 들려줍니다. 남자가 여자를 발견하고, 남자와 여자가 만나며 남자는 온전히 여자를 발견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남자는 그 여자에게 가기 위해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납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는 새로운 길을 시작함을 의미합니다. 남자는 여자를 위한 모든 것이고, 여자는 남자를 위한 모든 것입니다.

 

이 남자와 여자의 계약의 수호는 비록 죄인들이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고, 혼란스럽고 비천하고 신뢰를 잃어버리고, 불확실하기는 하지만 오늘날의 상황 속에서 믿는 우리들에게는 매력적이고 의무적인 소명입니다. 동일한 창조의 이야기와 죄 이야기는 이에 대한 아름답기 그지없는 아이콘을 우리에게 맡깁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혀주셨다(창세 3,21). 우리를 놀랍게 만드는 죄 지은 한 쌍을 향한 연민의 모상입니다. 바로 남자와 여자를 향한 하느님의 연민입니다! 인간 부부에 대한 부성적인 수호의 모상입니다. 하느님 몸소 당신의 걸작을 돌보시고 보호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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