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대전교구 가정사목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2세 교황)
사랑이 없다면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일 수 없고,
또한 사랑이 없다면 가정이 살아남고 성장하여
인간 공동체로서 완성될 수가 없습니다 (가정공동체 18항)
       
 
전체글 보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8-11 (목) 14:08
ㆍ조회: 645      
http://gjsamok.zerois.net/cafe/?gajeong.2479.
“ 교황님과 함께하는 교리 - 남자와 여자(1) ”



남자와 여자(1)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교리는 가정의 핵심 주제에 할애되었습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의 창조를 통해 그리고 혼인성사를 통해 인류에게 하신 위대한 선물입니다. 오늘 교리와 다음 교리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상이성과 보완성을 향해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상이성과 보완성은 신적 창조의 정점에 있습니다. 이후에 이어질 두 가지는 혼인의 또 다른 주제들에 관한 것이 될 것입니다.

 

창세기의 첫 번째 창조 이야기에 대한 짧은 주석과 함께 시작하도록 합시다. 우리는 이 이야기 안에서 하느님께서 우주와 살아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후 걸작을 창조하셨는데 바로 당신의 모습을 따라 만든 인간 존재입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그들을 창조하셨는데,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창세 1,27)고 창세기는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알다시피 성적 상이성은 삶의 수많은 형태들, 살아있는 존재들의 긴 단계 안에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오직 남자와 여자 안에서만 성적 상이성은 그 자체 안에 하느님의 모상과 닮음을 지닙니다. 성경 본문은 두 절 안에서(26-27) 세 번에 걸쳐 그것을 되풀이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하느님의 모상이자 닮음입니다. 이는 남자만 하느님의 모상을 지닌 것도 아니고 여자만 하느님의 모상을 지닌 것도 아니며 한 쌍으로서 남자와 여자가 하느님의 모상인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상이성은 대립 또는 예속이 아니라 언제나 하느님의 모상과 닮음에 따라 친교와 자녀 출산을 위한 것입니다.

 

경험이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인간 존재는 자신을 잘 알기 위해서 그리고 조화롭게 성장하기 위해서 남자와 여자 사이의 상호성을 필요로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을 때 그 결말들이 보입니다. (그 결말들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간에 잘 들어주고 도와주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관계 안에서 다시 말해서 생각과 행동, 애정과 일, 신앙 안에서 상호적으로 부요하게 됨 없이 두 사람은 남자와 여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근대와 현대 문화는 이 상이성의 이해를 더욱 풍부하게 하는 새로운 공간, 새로운 자유, 새로운 깊이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의심과 많은 회의주의도 이끌어 들였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속으로 묻습니다. 소위 말하는 젠더 이론이 성적 상이성과 더 이상 동의할 수 없기 때문에 성적 상이성을 없애버리려는 좌절의 표현 그리고 체념의 표현은 아닌가 하구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후퇴할 위험이 있습니다. 상이성의 제거는 사실 해결책이 아닌 문제입니다.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자와 여자가 더욱더 대화를 나누어야 하고 더욱더 서로를 경청해야 하고 더욱더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존중으로 서로를 대해야 하며 우정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유지되는 이러한 인간적 토대와 함께 전 생애를 위한 혼인적 결합과 가족들의 결합을 설계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혼인 관계와 가족 관계는 믿는 이들에게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있어 진지한 일입니다. 저는 지식인들에게 마치 더욱더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의무들을 위해 부차적이 된다는 듯이 주제를 황폐하게 만들지 말도록 촉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남자와 여자의 계약에 땅을 맡기셨습니다. 그 실패는 애정의 세계를 건조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희망의 하늘을 어둡게 만듭니다. 그 표시들은 이미 걱정스러울 정도이며 우리는 그것들을 보고 있습니다. 저는 많은 것들 중에서 제가 보기에 우리가 더욱 더 긴급하게 온 힘을 기울여야만 한다고 믿는 두 가지 점을 일러두고자 합니다.

 

첫 째, 만약 우리가 남자들과 여자들 사이의 상호성에 더욱 힘을 실어주기 원한다면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가 여성의 편에서 더 많은 것을 해야 합니다. 사실상 여성에게 더욱더 귀를 기울여야 할 뿐만 아니라, 그녀의 목소리가 실질적인 무게, 사회와 교회 안에서 인정된 권위를 가져야 함이 필요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여성은 하위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시대보다 여성에게 덜 호의적이었던 상황에서 예수께서 여성을 생각하신 그 방식 자체는 강력한 빛을 줍니다. 그 빛은 먼 곳으로 데려가는 길을 밝혀줍니다. 그 길에 대해 우리는 그저 한 조각쯤을 지나왔을 뿐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여성의 천부적 재능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여성이 사회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여성은 사물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줄 압니다. 바로 인간의 사유를 완전하게 하는 눈입니다. 더욱더 창조적이고 용기 있게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남자와 여자의 주제와 관련한 두 번째 성찰입니다. 저는 혹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하느님께 대한 집단적인 신뢰의 위기, 불신과 냉소로 체념하게 만드는 병의 위기가 남자와 여자 사이의 계약의 위기와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속으로 물어봅니다. 사실상 성경의 이야기는 지상 낙원과 원죄에 관한 상징적인 위대한 묘사를 통해 하느님과의 친교가 한 쌍의 인간들의 친교 안에 반사되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한 신뢰의 상실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분열과 갈등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여기에서 남자와 여자 사이의 계약 안에도 역시 하느님의 모습이 새겨져있는 창조주의 계획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기 위한 믿는 모든 사람들의 책임, 그뿐만 아니라 믿는 이들의 가정들의 책임, 교회의 커다란 책임이 기인합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계약이 선 안에서 삶을 통해 이루어질 때 땅은 조화와 신뢰로 가득 채워집니다. 그리고 만약 남자와 여자가 그들 사이에 함께, 그리고 하느님과 함께 그것을 추구한다면 의심의 여지없이 그것을 발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모상인 이 아름다움의 증거를 향해 우리를 격려합니다.

 








Copyright ⓒ 천주교 대전교구 가정사목부 All Rights Reserved. 301-802 대전시 중구 대종로 471 가톨릭문화회관 215
TEL.042-256-5487~8 FAX. 042-256-54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