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대전교구 가정사목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2세 교황)
사랑이 없다면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일 수 없고,
또한 사랑이 없다면 가정이 살아남고 성장하여
인간 공동체로서 완성될 수가 없습니다 (가정공동체 18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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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8-09 (화) 17:19
ㆍ조회: 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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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님과 함께하는 교리 - 어린이들(1) ”



어린이들(1)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머니, 아버지, 자녀들, 형제들, 조부모 등 가정생활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면밀히 살펴본 후 저는 어린이들에 대한 언급과 함께 가정에 관한 교리의 첫 부분을 마무리 지으려합니다. 저는 그것을 두 개로 나누어 할 예정입니다. 하나는 어린이들은 인류를 위한 위대한 선물이라는 사실에 관해 머무를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불행하게도 유년기에 상처를 입히는 것들에 관해 머무를 예정입니다. 어린이들은 인류를 위한 위대한 선물 맞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태어나도록 두지 않기에 크게 배척을 받는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제가 최근 아시아 사목 방문 동안에 만났던 많은 어린이들이 떠오릅니다. 그들은 생명으로 가득했고 열정적이었습니다. 한편 저는 그들 중 많은 어린이들이 적합지 못한 조건들 가운데 살아가고 있음을 봅니다. 사실 어린이들이 어떻게 취급되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회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는 윤리적으로만이 아니라 사회학적으로도 그런데, 그 사회가 자유로운지 아니면 국제적인 관심들의 노예와도 같은 사회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어린이들은 우리에게 생의 초기부터 우리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의 자애와 돌봄에 의존하고 있는 존재들임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아드님은 이와 같은 과정을 건너뛰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해마다 성탄에 관상하는 신비입니다. 구유는 가장 단순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이 실재를 우리에게 전달하는 아이콘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하느님께서는 어린이들에게 당신을 이해시키는 것이 어렵지 않고 어린들은 하느님을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에 작은이들에 관한 예수님의 강력하고 아름다운 말씀이 있다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작은이들이라는 이 낱말은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지하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특히 어린이들이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마태 11,25).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10).

 

그러므로 어린이들은 그 자체로 인류를 위한 부요함이며 교회를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필요한 조건들을 계속해서 상기시키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존재들, 사랑과 용서가 필요한 존재들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도움과 사랑과 용서가 필요합니다!

 

어린이들은 또 다른 아름다운 것을 우리에게 기억하게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항상 자녀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비록 우리가 어른이 되거나 노인이 되어도, 부모가 되고 책임감을 지니는 어떤 자리에 올라도 이 모든 것 아래 우리의 정체성은 자녀로 머뭅니다. 우리 모두는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언제나 생명이 우리가 우리에게 준 것이 아니고 우리가 받는 것이라는 사실로 우리를 이끌어갑니다. 생명의 위대한 선물은 우리가 받은 가장 첫 번째 선물입니다. 때로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버린 채 살아갈 위험이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우리 실존의 주인인양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근본적으로 종속된 존재들입니다. 사실 어떤 연령대나, 어떤 상황, 어떤 사회적 조건에서도 우리는 언제나 자녀들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큰 기쁨의 동기입니다. 이는 어린이들이 그들의 존재 자체로 우리에게 주는 주요한 메시지입니다. 현존을 통해서만 우리 모두와 우리 각자가 자녀들임을 기억합니다.

 

어린이들이 인류에게 가져다주는 선물들과 풍요로움은 정말 많습니다. 저는 몇 가지만 기억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실재를 보는 그들의 방식을 지니는데, 신뢰 어린 눈길과 순수한 눈길입니다. 어린이는 아빠 엄마에게 자연적인 신뢰를 가집니다. 하느님께 예수님께, 성모님께도 자연스러운 신뢰를 가집니다. 동시에 그의 내적인 눈길은 순수하고 아직 마음을 굳어버리게 만드는 삶의 때로부터, 이중성에, 나쁜 영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린이들 역시 원죄를 가지고 있고, 이기주의를 가지고 있음을 압니다. 하지만 그들을 순수함과 내적인 단순성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외교적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느끼는 대로 말하고, 보는 대로 말합니다. 많은 경우 어린이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거 별로예요. 맘에 안 들어요.”라고 말함으로써 부모님들을 곤란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중적인 사람들이 아니고 아직도 우리 어른들이 불행히도 이미 배워버린 이중성의 지식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어린이들은 그 내적인 단순함으로 자기 안에 부드러움(연민)을 받아들이고 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드러움(연민)은 성경이 말하듯이(에제 36,26 참조) 돌 같은마음이 아니라 살 같은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부드러움(연민)은 또한 시입니다. 사물들과 사건들을 그저 단순한 대상, 그저 유용하기 때문에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취급하지 않고 그것들을 느끼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웃을 줄 알고 눈물 흘릴 줄 압니다. 제가 어린이들을 안아줄 때 그들은 미소를 보냅니다. 어떤 어린이들은 내가 흰 옷을 입은 것을 보면서 내가 주사를 놓으러 오는 의사라고 믿고 울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어린이들은 그렇습니다. 미소를 짓고 눈물을 흘립니다. 우리 어른들에게 이 두 가지는 자주 막혀버립니다.” 우리는 그러한 능력이 못 됩니다. 많은 경우 우리의 미소는 만화 속 미소, 생명이 없는 미소, 생기가 없고 인위적인 미소일 때가 많습니다. 어린이들은 자연스럽게 미소를 짓고 자연스럽게 웁니다. 언제나 마음에 의지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자주 막혀 버리고 이 웃고 울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들은 우리에게 새롭게 웃고 우는 법을 가르쳐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속으로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자연스럽게 신선하고 사랑 어린 웃음을 웃는가? 아니면 내 미소는 인위적인가?’ ‘나는 아직도 울 줄 아는가, 아니면 울 줄 아는 능력을 잃어버렸는가?’ 이 두 가지 질문은 매우 인간적인 것으로 어린이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이유들로 인해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에 어린이처럼 되라고 초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나라는 그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기때문입니다(마태 18,3; 마르 10,14 참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어린이들은 생명, 유쾌함, 희망, 불운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삶은 그런 것입니다. 당연히 걱정거리도 지니고 있고 때로는 많은 문제들도 지닙니다. 하지만 어린이가 없는 슬프고 회색빛의 사회보다는 이런 걱정거리들과 문제들과 함께 하는 사회가 더 좋은 사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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