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대전교구 가정사목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2세 교황)
사랑이 없다면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일 수 없고,
또한 사랑이 없다면 가정이 살아남고 성장하여
인간 공동체로서 완성될 수가 없습니다 (가정공동체 18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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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8-05 (금)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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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님과 함께하는 교리 - 조부모(1) ”



조부모(1)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과 다음 주 수요일 교리는 가정 안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고모, 이모인 노인들에 할애할 예정입니다. 오늘 우리는 노인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성찰할 것이고 다음 주 수요일에는 좀 더 긍정적으로 이 연령대가 지니고 있는 소명에 관해 성찰할 것입니다.

 

의학의 발달 덕분에 생명이 연장되었습니다. 하지만 사회는 생명에 넉넉하지않습니다! 노인 숫자는 증가했지만 우리 사회 조직은 정당한 존중을 통해 그들의 위치를 마련하고, 그들의 품위와 연약함을 위한 구체적인 고려를 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젊을 때 우리는 노년을 마치 멀리해야 하는 질병처럼 무시하게 됩니다. 그 후 우리가 노인들이 되고 특히 가난할 때, 외롭고 병들었을 때, 우리는 결과적으로 노인을 무시하는 효율성 위에 조직된 사회의 공백을 체험합니다. 노인은 하나의 부요함입니다. 무시될 수 없습니다.

 

베네딕토 16세께서는 노인들을 위한 집을 방문했을 때 분명하고 예언적인 말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사회의 질은, 저는 문명의 질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노인들을 어떻게 취급하느냐, 공동의 삶 안에서 그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가에 따라 판단됩니다(2012.11.12.) 그렇습니다, 노인에 대한 주의와 관심은 한 문명의 차이를 만듭니다. 어떤 문화 안에 노인을 향한 관심이 있습니까? 노인을 위한 자리가 있습니까? 만약 노인의 슬기와 지혜를 존중할 줄 알게 된다면 이런 문화는 진보하게 될 것입니다. 노인을 위한 자리가 없는 문화 또는 그들이 문제를 만들어낸다고 그들을 폐기시킨 사회는 그 자체 안에 죽음의 바이러스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서양의 학자들은 현시대를 마치 고령의 시대처럼 제시합니다. 즉 자녀는 줄고 노인은 증가합니다. 이러한 불균형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질 뿐만 아니라 이 시대 사회를 향한 커다란 도전입니다. 하지만 이윤의 문화는 노인들을 마치 짐, 쓸모없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이 문화는 노인을 생산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무거운 짐이라고 여깁니다. 어쨌든 이렇게 생각하는 귀결은 무엇입니까? 폐기처분되는 것입니다. 폐기처분된 노인을 보는 것은 나쁜 일입니다. 아주 나쁜 일이고 죄입니다! 공개적으로 감히 그것을 말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일어납니다! 이 폐기처분의 문화에 익숙해지는 어떤 비겁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군중을 폐기하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과 상처받기 쉬운 취약성에 대해 점점 커지는 두려움을 몰아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노인 안에 견딜 수 없는 존재, 버려진 존재라는 고통이 증가되게 만듭니다.

 

이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제가 일을 하고 있을 때 저는 직접 이런 현실에 부닥쳤습니다. “노인들은 버려졌습니다. 그것은 물질적인 불안정함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늘날 오직 젊은이만이 유용하고 즐길 수 있는 소비주의 모델에 따라 관련되는 것도, 참여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으며 그들 자신에 대해 말하지 못하게 하는 문화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극복해야만 하는 수많은 어려움 안에서 우리의 한계를 반영하는 그들의 한계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기주의로 인해 버려졌습니다. 이런 노인들은 그와 반대로 사회 전체를 위해 우리 민족의 슬기로운 보호구역일 있습니다. 노인들은 우리 민족의 지혜로운 보존구역입니다! 사랑이 없을 때 얼마나 쉽게 양심이 잠들게 만드는지요!”(‘오직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Città del Vaticano 2013, p. 83).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저는 제가 요양원을 방문했을 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를 기억합니다. 여러 번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잘 지내시죠? 자녀들은요?” “좋아요, 잘 지냅니다.” “자녀가 몇이에요?” “많아요.” “자주 방문하러 옵니까?” “그럼요, 자주 와요.” “ 마지막으로 방문 온 때는 언제였어요?” 저는 한 노인분이 제게 이렇게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성탄 때였어요.” 우리는 8월을 보내고 있었거든요! 여덟 달 동안 자녀들이 방문을 오지 않은 겁니다. 그러니 여덟 달 동안 버려진 것이지요! 이것을 일컬어 죽을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어린아이였을 때 한번은 할머니께서 어떤 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분은 먹을 때 지저분해지곤 했는데요, 왜냐하면 입으로 국이 든 수저를 잘 가져가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아들이, 즉 그 가정의 아빠가 그 노인을 같이 밥 먹는 식탁에서 옮기기로 결정하고, 혼자 밥 먹도록 잘 보이지 않는 부엌에 있는 작은 식탁으로 옮겼습니다. 그렇게 해서 점심식사나 저녁식사에 친구들이 왔을 때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습니다. 며칠 후 집에 도착한 그는 나뭇조각과 망치와 못을 가지고 노는 막내아들을 보았습니다. 그 아이는 거기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너 뭐하니?” “식탁 만들어요, 아빠.” “식탁은 뭐하려고?” “아빠가 노인이 되면 거기서 먹도록 하기 위해서요.” 어린이들은 우리에 대해 더 잘 인식합니다!

 

교회의 전통 안에는 생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노인들과 연대적이고 애정 어린 동행을 위해 늘 준비되어 있는, 노인들에게 가까이 하는 문화를 언제나 유지했던 지혜의 보따리가 있습니다. 그러한 전통은 성경 안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집회서의 이런 표현들이 그 예가 됩니다. “노인들의 이야기를 소홀히 하지 마라. 그들 또한 조상들에게 배웠고 이제는 네가 그들에게서 지각과 적절한 때에 대답하는 법을 배우리라(집회 8,9).

 

교회는 노년에 대해 참아주지 못하는 사고방식, 무관심과 경멸의 사고방식에 동화되기를 원하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노인이 그 공동체의 살아 있는 일부분이라고 느끼게 하는 감사에 대한 집단적 감각, 존경과 융숭한 대접의 감각을 일깨워야 합니다.

 

노인들은 우리와 같은 길, 우리와 같은 집, 합당한 삶을 위한 우리의 일상의 전쟁터에 우리보다 앞서 있었던 남자와 여자들이고, 아버지 어머니들입니다. 그분들은 우리가 많은 것을 얻게 하신 남자와 여자들입니다. 노인은 소외된 존재가 아닙니다. 노인은 우리입니다. 우리는 얼마 후 또는 좀 더 시간이 흐른 후 피할 수 없이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노인이 됩니다. 만약 우리가 노인을 잘 모시는 것을 배우지 않는다면 우리도 그대로 대우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연약한 노인들입니다. 하지만 그중 몇몇은 아주 약하고, 많은 사람들은 홀로이며 병들었습니다. 몇몇은 다른 사람들의 돌봄과 치료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 때문에 우리는 뒤로 물러나야 할까요? 그들을 그들의 운명에 내버려둘까요? 가까운 이웃관계가 없는 사회, 보상 없는 무상성과 애정이 사라져가는 곳은 사악한 사회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한 교회는 이런 퇴화를 참을 수 없습니다. 가까운 이웃 관계와 무상성이 더 이상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그 영혼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노인들을 위한 공경이 없는 곳에는 젊은이들을 위한 미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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