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대전교구 가정사목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2세 교황)
사랑이 없다면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일 수 없고,
또한 사랑이 없다면 가정이 살아남고 성장하여
인간 공동체로서 완성될 수가 없습니다 (가정공동체 18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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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8-04 (목)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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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님과 함께하는 교리 - 형제들 ”



형제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가정에 관한 우리의 교리 여정 중에 아버지, 어머니, 자녀의 역할에 대해 성찰한 후 오늘은 형제 차례입니다. ‘형제자매는 그리스도교가 매우 사랑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가족적인 경험에 힘입어 모든 시대와 문화가 이해하는 말입니다.

 

형제 관계는 하느님 백성의 역사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생생한 경험 안에서 계시되었습니다. 시편 저자는 형제 관계의 아름다움을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보라, 얼마나 좋고 얼마나 즐거운가, 형제들이 함께 사는 것이!”(시편 132,1). 이는 정말입니다. 형제애는 아름답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형제자매라는 이 인간적인 체험 역시 완전하게 만드셨는데, 삼위일체적 사랑 안에 그것을 취하심으로써, 그리고 친척 관계들을 초월할 만큼 힘 있게 만드심으로써, 그리고 이 타자성의 모든 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형제 관계가 파괴되면, 형제들 사이의 관계가 파괴되면 갈등과 배신, 증오의 고통스러운 경험의 길이 열린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이런 부정적인 출구의 예가 됩니다. 아벨을 살해한 후 하느님께서는 카인에게 물으십니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창세 4,9). 모든 세대에 걸쳐 계속해서 되풀이하시는 주님의 질문입니다. 불행히도 모든 세대에 걸쳐 카인의 비극적인 대답 역시 계속해서 되풀이됩니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창세 4,9). 형제들 사이의 관계의 파괴는 인간성을 위해 아주 추악하고 나쁜 일입니다. 가정 안에서도 역시 작은 일들을 두고, 또는 유산 문제를 놓고 얼마나 많이 형제들이 다투고 서로 말도 안하고 인사조차 하지 않곤 합니다. 이는 정말 나쁜 일입니다. 형제애는 모든 형제가 아홉 달 동안 같은 어머니 태중에 거처했음을 생각할 때, 엄마의 살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매우 위대한 일입니다! 형제애는 파괴될 수 없습니다.

우리 좀 생각해 봅시다. 모든 사람이 분열된 형제가 있는 가정, 다툼이 있는 가정을 만듭니다. 우리 아마 우리 가정 안에서 있을 수 있는 이런 가정들을 위해 주님께 청합시다. 주님께서 형제들이 재결합을 이루고 가정을 재건하는 데 도와주시기를 청합시다. 형제애는 파괴되어서는 안 되며, 파괴되었을 때는 카인과 아벨에게 일어난 일들이 발생합니다. 주님께서 카인에게 그의 형제가 어디 있는지를 물었을 때 그는 모른다고, 자기는 형제를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는 아주 고약한 일이며 매우 큰 고통스런 일입니다. 우리의 기도 안에서 언제나 분열된 형제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가정 안에서 자녀들 가운데 형성되는 형제 관계는 만약 다른 사람들을 향한 개방성을 위한 교육의 분위기에서 생겨난다면 이는 자유와 평화의 위대한 학교입니다. 가정 안에서 형제들 사이에 인류의 공존, 사회 안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에 대해 언제나 자각하고 있지는 않을지라도 세상 안에 형제애를 도입하는 것은 가정입니다! 가족의 교육과 애정으로 영양을 공급받은 이 형제애의 첫 체험에서부터 출발하여 형제애의 양식은 마치 하나의 약속처럼 사회 전체와 민족들 사이의 관계를 향해 퍼져 나갑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서 이 형제애의 관계에 부어주시는 축복이 나라와 언어와 문화, 심지어 종교의 차이를 초월하는 능력이 되게 함으로써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확장되어 나갑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 이 사람은 나에게 바로 형제이며 자매와 같아!”라고 말할 때 그들 사이에 너무나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역사는 자유와 평등 역시 형제애가 없다면 개인주의로 가득 채워지고 개인적인 이해관계와 기회주의로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했습니다.

 

가정 안에서 형제애는 우리가 더 어리고 연약하고 아프거나 장애를 가진 형제나 자매를 감싸게 되는 염려, 인내, 애정을 보게 될 때 더욱 더 특별한 방식으로 빛납니다. 세상 안에는 이렇게 하는 형제자매들이 아주아주 많은데 그들의 관대함을 우리는 충분히 알아주지는 못합니다. 가정 안에 형제들이 많을 때, 저는 오늘 한 가정과 인사를 나눴는데, 아홉 명인가요?, 맏이는 엄마와 아빠를 도와 어린 동생들을 보살핍니다. 형제 사이에 도움을 주는 이런 일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형제가 있다는 것, 자매가 있다는 것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강력한 체험입니다. 그리스도인 형제애도 같은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가장 작고 연약하고 가난한 형제들은 우리의 연민을 받아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얻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형제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가난한 이들이 마치 집처럼 느낄 때 우리 그리스도인 형제애는 생명을 얻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은 가난한 이들, 힘없는 이들을 만나러 갑니다. 그것은 이념론적인 프로그램에 복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과 모범이 우리 모두가 형제들이라고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느님 사랑의 원리이며 사람들 사이의 모든 정의의 원리입니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제안합니다. 이 교리를 마치기까지 몇 줄 정도 남았는데요, 끝내기 전에 우리 각자 침묵 속에서 우리 형제와 자매들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침묵 속에서 그들을 위해 깊은 곳으로부터 기도합시다. 잠깐 동안 침묵합시다.

 

그렇습니다. 이 기도를 통해 우리는 그들을 생각과 마음으로 여기 이 광장에 축복을 받도록 데려왔습니다.

 

오늘 가장 필요한 것은 관료적이고 기술 만능의 우리 사회의 중심에 형제애를 되가져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자유와 평등 역시 그 올바른 위치를 얻을 것입니다. 따라서 예속 또는 두려움으로 인해 우리 가정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버리지 않도록 합시다. 아들과 딸들의 폭넓은 형제적 경험들을 박탈하지 않도록 합시다. 그리고 신앙은 하느님의 축복으로 인해 빛나는 이 체험으로부터 잡아끄는 능력인 폭넓은 지평에 두고 있는 우리의 신뢰를 잃지 않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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