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대전교구 가정사목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2세 교황)
사랑이 없다면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일 수 없고,
또한 사랑이 없다면 가정이 살아남고 성장하여
인간 공동체로서 완성될 수가 없습니다 (가정공동체 18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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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8-03 (수) 10:21
ㆍ조회: 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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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님과 함께하는 교리 - 자녀들 ”



자녀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에 관해 살펴본 후 가정에 관한 이 교리에서 저는 자녀들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이사야 예언서의 아름다운 이미지로부터 출발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여 네게로 온다. 너의 아들들이 먼 곳에서 오고 너의 딸들이 팔에 안겨 온다. 그때 이것을 보는 너는 기쁜 빛으로 가득하고 너의 마음은 두근거리며 벅차오르리라(이사 60,4-5). 아름답게 빛나는 이미지이며 히브리 백성이 조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상실과 이별의 오랜 시기를 지난 후 자유와 평화의 미래를 향해 함께 걸어가는 부모와 자녀 사이의 재결합 안에서 실현되는 행복의 이미지입니다.

 

사실 한 백성의 희망과 세대 간의 조화 사이에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자녀의 기쁨은 부모의 가슴을 뛰게 하고 미래를 다시 열어줍니다. 자녀는 가정의 기쁨이며 사회의 기쁨입니다. 자녀는 재생산적 생물학의 문제가 아니며, 결코 자기실현의 수많은 방법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부모의 소유물은 더더욱 아닙니다. 자녀는 거저 선사받은 선물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자녀는 선물입니다. 자녀 각자는 유일하고 반복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동시에 그 근본에 틀림없이 연결된 존재입니다.

아들과 딸의 존재는, 하느님의 계획에 따르면, 자기 자신 안에 다른 인간 존재, 근원적이고 새로운 다른 존재의 생명을 점화하는 가운데 그 자신을 실현한 사랑의 기억과 희망을 지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부모에게 각 자녀는 자기 자신이며, 차이가 있고, 다릅니다.

가정에 대한 기억 하나를 말씀드리게 해주십시오. 저는 저의 엄마를 기억합니다. 저희 형제는 다섯이었는데, 엄마는 저희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저는 자식이 다섯이랍니다.” 언젠가 저희가 더 사랑하는 자녀가 누구인지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는 다섯 자녀가 마치 다섯 손가락과 같다고 말씀하시며 손가락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이 손가락 하나를 때리면 나를 아프게 만드는데, 다른 손가락을 때려도 마찬가지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모두가 당신의 자녀이지만 다섯 손가락처럼 다 다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정은 바로 그와 같습니다. 자녀들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같은 자녀입니다.

 

한 아들이 사랑받는 것은 그가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아름답거나 해서가 아닌 것입니다. 그냥 아들이기 때문에 사랑받습니다. 나처럼 여긴다거나 내 욕구를 대신해 줘서가 아닌 것이지요. 한 아들은 그냥 아들인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태어난 생명이지만 그 자신을 향해, 그의 선과 가정의 선, 사회와 인류 전체의 선을 향해 운명 지어진 존재입니다.

 

여기에 아들과 딸 존재의 인간 체험의 심오함 역시 자리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놀라게 하는데, 다할 줄 모르는 사랑의 가장 무상적인 차원을 우리에게 발견하게 해 줍니다. 먼저 사랑받았음의 아름다움입니다. 자녀들은 오기도 전에 먼저 사랑받았습니다. 많은 경우 광장에서 제게 배를 보여주면서 축복을 부탁하는 엄마들이 있습니다. 이 아기들은 세상에 오기 전에 사랑받았습니다. 이것이 무상성이며, 이는 사랑입니다. 그 아기들은 언제나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처럼 태어나기 이전에 사랑받았습니다. 그 아기들은 말하거나 생각할 줄 알기 이전에, 나아가 세상에 오기 이전에, 그리고 공로를 얻을만한 어떤 일을 행하기 이전에 사랑받았습니다! 자녀는 이 진정한 기적의 최종 근원인 하느님의 사랑을 알기 위한 근본조건입니다. 상처받기 쉬운 자녀 각자의 영혼 안에 하느님께서 이 사랑의 날인을 찍으시는데, 이는 그의 인격적 존엄성,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파괴할 수 없는 존엄성의 토대입니다.

 

오늘날 자녀들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의 미래를 상상하는 일로 보입니다. 아버지들은 제가 지난번 교리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퇴보한 것처럼 보이고 자녀들은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의 걸음들을 내딛는 데 대해 더 불확실해진 듯 보입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부터 세대 간의 좋은 관계를 배울 수 있는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 각자를 자유롭게 두시지만 결코 우리를 홀로 버려두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실수해도 그분은 우리를 위한 당신 사랑을 감소하시는 법 없이 계속해서 참을성 있게 우리를 따라오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위한 당신 사랑에서 물러서시는 법이 결코 없으십니다!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시며 만약 앞으로 나아가실 수 없다면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하지만 결코 후퇴하시지는 않으십니다! 그분시며 그분은 당신의 자녀들이 용기 있기를 바라시며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십니다.

 

자녀들 편에서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임무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들에게 지극히 올바른 일은 그들이 받은 것보다 더 좋아지는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오만하지 않게, 과신하지 않고 이루어져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치를 깨달을 줄 아는 것이고 부모님을 명예롭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4계명은 자녀들에게 어머니와 아버지를 공경하라.”(탈출 20,12)고 요구합니다. 이 계명은 하느님과 관련된 계명들 바로 다음에 옵니다. 사실, 신성한 어떤 것, 신적인 어떤 것, 사람들 간에 비해 전혀 다른 부류의 근원에 있는 어떤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4계명의 성서적 표명 안에 그러면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주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라는 것을 덧붙입니다. 세대 간의 좋은 관계는 미래의 보장이며 참으로 인간적인 역사의 보증입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녀들의 사회는 명예롭지 않은 사회입니다. 부모가 공경을 받지 못할 때 자기의 명예도 실추됩니다! 그런 사회는 탐욕스럽고 메마른 젊은이들로 가득 채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자녀들로 둘러싸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회, 자녀들을 무엇보다 걱정거리, 무거운 짐, 위험으로 여기는 인색한 세대의 사회 역시 쪼그라든 사회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여기 유럽 사회를 생각해 봅시다. 자녀들을 원치 않기에, 자녀들을 갖지 않는 까닭에 쪼그라든 사회입니다. 출생률이 1%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각자 생각해 보고 대답합시다. 만약 자녀들에 관대한 한 가정을 마치 짐처럼 바라보게 된다면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세대는, 복자 바오로 6세의 인간 생명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책임이 있어야 합니다. 자녀를 많이 갖는 것이 자동적으로 무책임한 선택이 될 수 없습니다. 자녀를 갖지 않는 것은 이기주의적 사회입니다. 생명은 증가되는 가운데 젊어지고 에너지를 얻습니다. 궁핍해지는 것이 아니라 풍요롭게 됩니다! 자녀들은 그들의 가정에 대한 책임을 지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자기의 선물들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가운데 성장합니다. 기쁨에 찬 형제애의 경험은 부모에 대한 존경과 보살핌에 활기를 불어넣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이 자녀가 있고 우리 모두는 (부모의) 자녀입니다. 우리 함께 잠시 침묵합시다. 만약 자녀가 있다면 우리 각자 마음속으로 자기 자녀를 생각합시다. 침묵 속에서 생각합시다. 그리고 우리 모두 우리 부모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생명의 선물을 두고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침묵 속에서 자녀를 가지고 계신 분들은 그들을 생각합시다. 우리 모두 우리의 부모님을 떠올려 봅시다. (침묵) 주님께서 우리 부모님을 축복해 주시고 여러분의 자녀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빕니다.

 

영원한 아드님, 시간 안에서 자녀가 된 예수님께서 그토록 단순하고 그토록 위대한 자녀라는 존재에 대한 이 인간적인 체험의 새로운 빛이 번져나가는 길을 발견하도록 도와주시기를 빕니다. 세대의 증가 안에는 하느님 자신으로부터 오는 모든 이의 생명이 지닌 부요함의 신비가 있습니다. 우리는 선입견에 도전함으로써 그것을 재발견해야 합니다. 신앙 안에서, 완전한 기쁨 안에서 그것을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제가 여러분 한가운데를 지나가며 자기 자녀가 축복받도록 자녀들을 높이 쳐드는 엄마 아빠를 보는 거 정말 아름답습니다. 이는 거의 신적인 몸짓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하시기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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