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대전교구 가정사목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2세 교황)
사랑이 없다면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일 수 없고,
또한 사랑이 없다면 가정이 살아남고 성장하여
인간 공동체로서 완성될 수가 없습니다 (가정공동체 18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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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8-02 (화)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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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님과 함께하는 교리 - 아버지(2) ”



아버지(2)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저는 가정에서 아버지의 위상에 관한 묵상 두 번째 부분을 전개하려고 합니다. 지난번에 저는 아버지의 부재의 위험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저는 좀 더 긍정적인 모습에 대해 바라보려 합니다. 성 요셉 역시 마리아가 임신했음을 알았을 때 마리아를 포기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천사가 개입하고 요셉에게 하느님의 계획과 ‘putativo’ 아버지의 사명을 밝혀줍니다. 그리고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기에 마리아를 자기 아내로 맞아들입니다(마태 1,24). 그리고 나자렛 가정의 아버지가 됩니다.

 

각 가정은 아버지를 필요로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아버지의 역할이 지닌 가치에 관해 잠시 머무르도록 합시다. 저는 잠언에서 발견되는 몇 가지 표현에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 표현들은 한 아버지가 자기 아들에게 향해 말하는 것입니다. “내 아들아, 너의 마음이 지혜로우면 내 마음도 기뻐하고, 너의 입술이 올바른 것을 말하면 내 속도 즐거워한다(잠언 23,15-16). 자기 아들에게 삶에서 가장 값진 것, 다시 말해 슬기로운 마음을 전달했음을 알게 되는 아버지의 감동과 자랑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네가 나와 똑같기에, 네가 너에게 말하고 행한 것을 그대로 되풀이하기에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단순하게 어떤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우리가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어떤 것을 말합니다. “나는 네가 지혜롭게 행동하는 것을 볼 때마다 행복할 것이며, 네가 정직하게 말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감동할 것이다. 지혜와 정직함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느끼고 판단하는 습관이 너의 것이 되도록 하는 것, 이것이 내가 너에게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네가 그렇게 되도록 네가 알지 못하는 것을 나는 너에게 가르쳤고, 네가 보지 못하는 실수들을 나는 바로잡아 주었다. 너는 아마도 젊을 때 완전히 깨닫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너에게 깊고 분별 있는 애정을 느끼게 해 주었다. 너는 오직 복잡한 것과 보호만을 원했을 수 있기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굳건함과 엄혹함에 대한 증언을 나는 너에게 주었다.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올바른 말들을 찾고 피할 수 없는 오해들을 견디기 위해 나 자신 스스로 먼저 마음의 지혜로움의 시련에 맞서야 했고 감정과 지나친 분노에 대해 조심해야 했다. 이제 아버지는 계속한다- 네가 너의 아들들과 모든 이들에게 그렇게 하려고 추구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감동한다. 나는 네 아버지인 것이 행복하다.” 이것이 슬기로운 아버지, 성숙한 아버지가 하는 말입니다.

 

아버지는 이런 유산을 전달하는 것이 얼마나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지 잘 압니다. 얼마나 가까이 있어야 하고, 부드러워야 하며, 굳건해야 하는지요! 하지만 아들이 이 유산을 공경하게 될 때 받는 보상과 위로는 어떠합니까! 그 모든 수고를 한순간에 바꾸어놓으며 모든 오해를 극복하고 모든 상처를 낫게 하는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가정 안에 아버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쁨과 슬픔, 수고와 희망 등 모든 것을 함께 나누기 위해 아내 곁에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성장하는 가운데 아버지는 그들 곁에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기뻐하고 노력할 때, 경솔할 때와 고통을 당할 때, 그들이 자기를 표현할 때, 입을 다물었을 때와 두려워할 때, 잘못된 길을 갈 때와 길을 다시 찾았을 때, 아버지는 언제나 그들 곁에 있어야 합니다. 곁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통제한다는 게 아닙니다. 지나치게 통제하는 아버지는 자녀를 성장하게 놔두지 못합니다.

 

복음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모범에 대해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한 분만이 참되게 선하신 아버지로 불릴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마르 10,18 참조). 우리 모두는 루카 복음 15장에 있는(15,11-32 참조) 그 유명한 탕자의 비유, 그보다는 자비의 아버지의 비유라고 불리는 비유를 알고 있습니다.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집의 대문에 서 있는 그 아버지의 기다림 안에서 보여주는 품위와 연민은 얼마나 놀랍습니까! 아버지한테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많은 경우 기다리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인내와 부드러움, 관대함과 자비를 가지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이지요.

 

좋은 아버지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기다릴 줄 알고 용서할 줄 압니다. 그렇습니다, 굳건함을 통해 고쳐줄 줄 압니다. 연약하고, 감정적이고 유약한 아버지가 아닙니다. 품위를 잃지 않고 고쳐줄 줄 아는 아버지는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하여 자녀를 보호할 줄 아는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저는 언젠가 혼인한 이들의 모임에서 한 아빠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어떤 때 자녀들에게 매를 좀 듭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존심을 잃지 않도록 하려고 보는 데서 때리지는 않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그는 존엄성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벌을 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올바른 방법으로 잘 지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에 대해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바로 가장 먼저 부성을 지닌 사람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오는 은총 없이 아버지들은 용기를 잃게 되고 터전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자녀들은 자신의 잘못에서 되돌아올 때 자신을 기다리는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자녀들은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아버지를 모른 척하려고 모든 짓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자녀한테는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아버지를 찾지 못한다면 그들 안에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남깁니다.

 

우리의 어머니인 교회는 아버지가 새로운 세대를 위한 수호자이고, 성 요셉처럼 의로움과 하느님의 보호 안에서, 선함 안에서, 신앙의 대체불가능한 중재자들이기에 그 모든 힘을 다해 가정 안에 아버지의 선하고 관대한 현존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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