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대전교구 가정사목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2세 교황)
사랑이 없다면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일 수 없고,
또한 사랑이 없다면 가정이 살아남고 성장하여
인간 공동체로서 완성될 수가 없습니다 (가정공동체 18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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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8-01 (월) 10:06
ㆍ조회: 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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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님과 함께하는 교리 - 아버지(1) ”


아버지(1)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가정에 관한 교리의 여정을 재개하도록 합시다. 오늘 우리는 아버지라는 말이 우리를 인도하도록 내어맡기도록 합시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그렇게 부르라고 가르치신 이름이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말입니다. 이 이름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향하게 하기 위해 사용하셨고, 당신이 지니신 그분과의 특별한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신 이래로 고유의 심오함을 새롭게 얻었습니다. 예수님에 의해 밝혀진 하느님, 아버지, 아들과 성령의 내밀함의 복된 신비는 우리 그리스도인 신앙의 핵심입니다.

 

아버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보편적인 말입니다. 그 말은 하나의 근본적인 관계를 가리키는데, 그 실재는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아버지 없는 사회라고 단정 지을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다시 말해서 특히 서양문화 안에서 아버지의 모습은 상징적으로 부재하고 사라졌으며 제거된 듯합니다. 그 일의 첫 번째 순간은 하나의 해방처럼 인식되었는데, 바로 아버지-주인, 외부에서 부과한 법의 대표적 표현과 같은 아버지, 자녀들의 행복의 감찰관 같은 아버지 그리고 젊은이들의 자주성과 독립의 장애물 같은 아버지한테서 해방되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가끔 몇몇 경우에 권위주의가 과거를 지배했고, 몇몇 경우는 탄압이 지배하기도 했습니다. 부모는 자녀들의 성장에서 인격적인 요구들을 존중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하인들처럼 취급했습니다. 아버지들은 자녀들이 자유롭게 자기의 길을 시작하도록 그들을 돕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유 안에서 자녀를 교육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녀들이 자기의 미래와 사회의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자기의 책임감을 떠맡도록 그들을 돕지 않았습니다.

 

이는 당연히 좋지 않은 태도입니다. 하지만 자주 발생하듯이 한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 나아갑니다. 우리 시대의 문제는 아버지들의 부재와 그들의 도피보다 더 그들의 현존에 대한 침범으로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들은 가족 또한 잊어버릴 만큼 자기 자신들과 자기의 일 그리고 때로는 자기 개인적인 실현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을 홀로 내버려둡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주교 시절부터 저는 오늘날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마치 고아와도 같은 상태로 나아가는 상황에 대해 경고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자주 아버지들에게 자녀들과 장난을 치고 잘 놀아주는지, 자녀들과 시간을 허비할 용기와 사랑을 가졌는지 묻곤 했습니다. 그리고 대답은 대부분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일이 너무 많아서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아버지는 성장하는 어린 자녀에게 부재했고, 그와 놀아주지 않았고 그와 더불어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가정에 관한 묵상을 하는 공동 여정 안에서 저는 더욱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에게 말하고자 합니다.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삶 안에서 아버지의 형상이 부재함은 매우 위중할 수 있는 공백과 상처를 낳습니다. 사실상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탈선들은 대부분 결핍, 즉 날마다 삶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권위 있는 모범과 안내자의 결핍, 가까이 있음의 결핍, 아버지의 사랑의 결핍에서 옵니다. 더욱더 심각한 것은 많은 젊은이들이 고아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정 안에서 고아입니다. 왜냐하면 아빠들은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자주 가정에 부재하고, 집에 있을 때도 아버지로서 처신하지 않습니다. 자녀들과 대화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교육 의무를 수행하지 않고, 자녀들이 빵과도 같이 필요로 하는 말을 동반한 좋은 모범, 원칙, 가치, 삶의 규칙들을 자녀들에게 주지 않습니다. 부성의 존재의 교육적 속성은 아버지가 일 때문에 집과 멀리 떨어져 있을 때일수록 더욱더 필요로 합니다. 때로 아빠들이 가정 안에서 어떤 자리에 있어야 하고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를 잘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므로 잘 모르기에 자녀들과 비견하는있을 법한 관계로 도망쳐 버림으로써 그들의 책임감을 약화시키고 뒤로 물러나고 의무를 소홀히 합니다. 아버지가 자녀의 동료여야 함은 맞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아버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당신이 그저 아들과 동등한 동료로만 처신한다면 이는 그 아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우리는 또한 시민 공동체 안에서도 봅니다. 시민 공동체는 그 제도를 통해 젊은이를 향해 일정한 책임감, 때로는 소홀하거나 좋지 않게 실행되는 책임감을 가집니다. 이것을 우리는 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책임감 역시 자주 젊은이를 고아로 버려두고 장래의 진리를 그들에게 제시하지 못합니다. 젊은이는 그렇게 지나가야만 하는 거리의 고아로 머뭅니다. 신뢰할 만한 스승에 대한 고아이며 마음을 뜨겁게 해 주는 이상들의 고아이며, 날마다 그 젊은이를 지탱해 주는 가치와 희망의 고아입니다. 그들은 우상으로 가득 채워지거나 아니면 그들에게서 마음을 빼앗습니다. 그들은 즐길 거리나 쾌락을 꿈꾸는 데 떠밀려 있지만 그들에게는 직업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돈이라는 신과 착각에 빠지게 되고, 참다운 부요함은 거부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겠다.”(요한 14,18) 하신 약속을 뜨겁게 하는 것은 아버지와 자녀 모두를 좋게 할 것입니다. 사실, 그분이 바로 지나가야 할 길이며 경청해야 할 스승이며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사랑이 미움을 이기고, 형제애의 미래와 모든 이를 위한 평화일 수 있는 희망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군가는 저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부님, 오늘 당신은 너무 부정적이었습니다. 당신은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서, 아버지가 자녀 가까이 있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이것을 강조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음 주 수요일 부성의 아름다움을 비춰보는 가운데 이 교리를 계속해 나갈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저는 빛을 향해 나아가 도달하기 위해 어둠에서 시작하기로 선택했습니다. 주님께서 이 일을 잘 이해하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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