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대전교구 가정사목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2세 교황)
사랑이 없다면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일 수 없고,
또한 사랑이 없다면 가정이 살아남고 성장하여
인간 공동체로서 완성될 수가 없습니다 (가정공동체 18항)
       
 
공개보도자료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4-13 (금) 09:27
ㆍ조회: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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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화문]2012년 제49차 성소주일 교황 담화문 ”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제49차 성소주일 담화
(2012년 4월 29일, 부활 제4주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2012년 4월 29일 부활 제4주일에 거행하는 제49차 성소주일을 맞아, ‘성소, 하느님 사랑의 선물’이라는 주제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모든 완전한 선물의 원천은 사랑이신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 4,16). 성경은 바로 창조에 앞서 하느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이 근원적인 유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바오로 성인은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미의 노래를 바칩니다. 아버지께서는 무한한 선의로 오랜 세월에 걸쳐 보편적 구원 계획, 곧 사랑의 계획을 성취하고 계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이신 예수님 안에서 “세상 창조 이전에 ……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에페 1,4). 우리는 존재하기도 ‘전에’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조건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이미 있는 것에서 …… 만들지 않으시고”(2마카 7,28) 무에서 창조하시어 우리가 당신과 온전한 친교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느님 섭리의 작품 앞에서 놀라움에 사로잡혀 시편 저자는 이렇게 외칩니다. “우러러 당신 손가락으로 빚으신 하늘하며, 굳건히 세우신 달과 별들을 바라보나이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시나이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시나이까?”(시편 8,4-5). 우리 존재의 심오한 진리는 이 놀라운 신비 안에 담겨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 특히 모든 인간은 사랑이신 하느님의 생각과 행위의 열매입니다. 이 사랑은 무한하고 충실하고 영원합니다(예레 31,3 참조). 이러한 사실을 깨달으면 참으로 우리의 삶이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고백록」의 유명한 구절에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늘 곁에 계시던 하느님께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완전히 바꾸어, 최고의 아름다움이시고 최고의 사랑이신 하느님을 찾고 탄성을 지릅니다.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내 안에 님이 계시거늘 나는 밖에서, 나 밖에서 님을 찾아, 못난 내가 당신의 아리따운 피조물 속으로 뛰어 들었나이다! 님은 나와 같이 계시건만 나는 님과 같이 아니 있었나이다. 당신 안에 있지 않으면 존재조차 없을 것들이 이 몸을 붙들고 님한테서 멀리했나이다. 부르시고 지르시는 소리로 절벽이던 내 귀를 트이시고, 비추시고 밝히시어 눈멂을 쫓으시니, 향 내음 풍기실 제 나는 맡고 님 그리며, 님 한번 맛본 뒤로 기갈 더욱 느끼옵고, 님이 한번 만지시매 당신 평화에 내 마음 살라지나이다”(『고백록』 제10권 27.38절, 최민순 역 참조). 이러한 은유로, 히포의 성인은 하느님을 만난 형언할 수 없는 신비, 곧 삶 전체를 바꾸어 놓은 하느님 사랑을 만난 그 신비를 그리려고 했습니다.

이 무한한 사랑은 인생길에서 앞장서 우리를 도와주고 우리를 부르며, 거저 주시는 하느님 선물에 뿌리를 둔 사랑입니다. 특히 직무 사제직과 관련하여 저의 선임자 요한 바오로 2세 복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사제가 하는 모든 활동은 사제가 더욱더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에 봉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줄 뿐만 아니라 교회의 머리이시며 목자이시고 배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더 사랑하고 그분께 봉사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곧 그리스도를 통하여 무상으로 한없이 쏟아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하여 끊임없이 응답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현대의 사제 양성』, 25항). 사실, 모든 성소는 하느님의 주도로 생겨납니다. 성소는 하느님 사랑의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 바로 ‘첫 걸음’을 내디디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안에 무슨 좋은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부어진”(로마 5,5) 하느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시대에 거룩한 부르심의 원천에는 주도하시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십니다. 제가 첫 번째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에서 쓴 것처럼, “사실 하느님께서는 여러 방식으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성경이 들려주는 사랑 이야기에서,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우리의 마음을 얻고자 하십니다. 최후 만찬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위에서 심장을 찔리시기까지, 부활하신 뒤 나타나시기까지, 사도들의 활동을 통하여 태어나는 교회의 길을 인도하신 그 위대한 행위들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찾아오십니다. 주님께서는 그 이후의 교회 역사에서도 계속 현존해 오셨습니다. 주님의 현존을 반영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성사들을 통하여, 특히 성체성사를 통하여 언제나 새롭게 우리를 만나러 오십니다”(17항).

하느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진실하시고, 천대에 이르도록 당신 ‘말씀’에 충실하십니다(시편 105[104],8 참조). 우리와 함께하시며 앞장서 가시는 하느님의 이 사랑의 매력적인 아름다움을 특별히 젊은 세대에게 언제나 새롭게 선포하여야 합니다. 드러나지 않게 고동치는 하느님 사랑은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코 멈추지 않는 원동력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 사랑에 우리의 삶을 열어 젖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으로(마태 5,48 참조) 날마다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높은 수준의 그리스도인 삶은 하느님‘처럼’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이 사랑은 자신을 충실하고 풍요로운 선물로 내어 주는 온전한 자기 헌신으로 드러납니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여러 해 동안 정직 제재를 받고 있던 그의 힘든 상황을 두고 마음 아파하는 세고비아 수도원의 원장 수녀에게 답신을 보내며, 하느님 뜻대로 행동하라고 권고하였습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안배하십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 사랑을 심으십시오. 그러면 사랑을 거두어들일 것입니다”(『서간집』, 26).

바로 이러한 자기 봉헌의 토양 위에서 하느님 사랑에 마음을 열 때 이 사랑의 열매로 모든 성소가 태어나고 자랍니다. 이 사랑의 샘에서 물을 길어 올리며, 기도하고, 하느님 말씀을 열심히 읽고, 성사들, 특히 성찬례에 자주 참여할 때, 우리는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웃 안에서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얼굴을 알아 뵙게 됩니다(마태 25,31-46 참조).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곧 하느님이라는 같은 원천에서 흘러나오고 이 원천으로 되돌아가는 이 ‘두 사랑’의 뗄 수 없는 관계를, 교황 대 그레고리오 성인은 새싹의 비유로 표현하였습니다. “우리 마음의 토양에 하느님께서 먼저 당신을 향한 사랑의 뿌리를 심어 두셨습니다. 여기에서, 새싹처럼 이웃 사랑이 돋아납니다”(「욥기의 교훈」, 7권, 24.28장, PL 75,780D).

이렇게 두 가지로 드러나는 유일한 하느님 사랑은, 직무 사제직이나 봉헌 생활을 향한 성소 식별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이들이 특별히 열렬하고도 순수한 마음으로 실천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성소의 두드러진 표시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은 사제들과 봉헌 생활자들이 불완전하게나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사랑은 사제 수품이나 복음적 권고의 서원을 통하여 특별한 봉헌으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요한 21,15). 베드로 사도가 하느님이신 스승님께 드린 이 힘찬 대답이,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는 삶, 기쁨이 넘치는 삶의 비결입니다.

사랑의 또 다른 구체적 표현은 특히 가장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향한 이웃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사제와 봉헌 생활자들이 사람들 사이에 친교를 이루는 일꾼이 되고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되도록 이끄는 결정적인 원동력입니다. 성별된 이들, 특히 사제들이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맺는 관계는 그들의 정신 자세에서 매우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차원이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아르스의 본당 신부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은 다음과 같이 즐겨 말하였습니다. “사제는 자신을 위한 사제가 아닙니다. 그는 여러분을 위한 사제입니다”(「아르스의 본당 신부. 그의 생각-그의 마음」, Foi Vivante, 1966, 100면).

친애하는 형제 주교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사제, 부제, 봉헌 생활자, 교리 교사, 사목 활동가, 젊은 세대를 가르치는 교육자 여러분, 저는 본당 공동체와 여러 교회 운동 단체들에 속한 이들 가운데 사제직이나 특별한 봉헌의 성소를 의식하고 있는 이들에게 더욱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이라고 간곡히 권고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하느님 사랑의 부르심에 기꺼이 “예”라고 응답할 수 있도록 교회 안에 호의적인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소 계발을 위한 사목의 과제는 실제로 그 길을 가는 데 도움이 되는 안내와 지침을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그 핵심은 하느님 말씀에 대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이 사랑은 성경을 더욱 가까이 하고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에서 끊임없이 열심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상생활의 온갖 소리들 속에서도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성찬례가 모든 성소 여정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완전한 사랑의 표현인 그리스도의 희생 안에서 하느님 사랑이 우리를 어루만집니다. 또한 여기에서 우리는 하느님 사랑의 ‘높은 수준’에 따라 살아가는 방법을 언제나 새롭게 배웁니다. 성경과 기도와 성찬례는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온전히 봉헌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 주는 소중한 보화입니다.

저는 지역 교회들과 그 안의 여러 단체들이 모두 성소를 신중히 식별하고 검증하는 자리가 되어, 젊은이들에게 지혜롭고 확고한 영성 지침을 제시해 주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인 공동체 자체가 모든 성소를 담고 있는 하느님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새 계명을 따르는 이러한 역동성은 그리스도인 가정 안에서 구체적으로 탁월하게 실현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가정의 사랑은 당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에페 5,32 참조).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사목 헌장 48항)인 가정 안에서, 새로운 세대들은 이처럼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의 놀라운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가정은 인성 교육과 그리스도인 교육을 위한 탁월한 자리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가정은 “하느님 나라에 봉헌된 생활을 위한 성소의 일차적이고 가장 훌륭한 못자리”(교황 권고 「가정 공동체」, 53항)도 될 수 있습니다. 가족들이 가정 안에서 사제직과 봉헌 생활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삼위 하느님의 삶을 지상에서 조화롭게 보여 주는 나자렛 성가정을 본받아 ‘친교를 배우는 가정들’이 교회 안에 더욱 많아질 수 있도록, 목자들과 모든 평신도들은 언제나 협력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바람으로, 저는 존경하는 형제 주교님들, 사랑하는 사제, 부제, 수도자, 모든 평신도 여러분, 그리고 특히 하느님의 목소리를 온유한 마음으로 듣고 기꺼이 충실하게 응답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진심으로 교황 강복을 보내 드립니다.

바티칸에서
2011년 10월 18일

교황 베네딕토 1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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