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대전교구 가정사목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2세 교황)
사랑이 없다면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일 수 없고,
또한 사랑이 없다면 가정이 살아남고 성장하여
인간 공동체로서 완성될 수가 없습니다 (가정공동체 18항)
       
 
세계주교대의원회"가정"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0-05 (수) 13:28
ㆍ조회: 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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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님과 함께하는 교리 - 가정 복음화 ”



가정 복음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가정에 관한 우리의 교리 여정의 이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는, 가정이 가정 안에서나 가정 밖을 향해서나 신앙을 알리고 전해야 하는 책임감을 살아가는 방식에 관해 살펴봅시다.

 

첫 번째로, 가정의 관계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마치 대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복음의 몇 가지 표현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두가 들어 아는 매우 강한 어조의 말씀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 10,37-38).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당연히 인간들을 향한 첫 번째 위대한 계명인 제 4계명을 무효화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십계명 가운데 앞의 세 가지는 하느님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고, 4계명은 인간들과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카나의 신랑과 신부를 위해 당신의 기적을 행하셨고, 남자와 여자 사이의 혼인 관계를 축성하셨으며, 가정생활에 자녀들을 되돌려주신 주님께서, 결코 우리에게 이런 관계에 무관심하라고 요청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믿는 신앙의 우위성을 입증하실 때 가족들의 애정보다 더 의미 있는 비교를 찾을 수 없습니다.

한편 이 가족 관계 자체는 신앙의 체험과 하느님 사랑에 대한 체험 안에서 더욱더 큰 의미로 채워지고 변화됩니다. 그리고 더욱 확대된 부성과 모성을 창조하고 모든 관계에서 소외된 사람들 역시 형제자매로 맞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되도록 자기 자신을 넘어서게 합니다.

어느 날 당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서 당신을 찾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며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4-35)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계산과 이익을 따지지 않는 애정들의 지혜는 가정이 지닌 가장 좋은 천부적인 재능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가정 안에서 애정들의 지혜의 분위기 속에 성장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들의 문법은 거기서 배워집니다. 거기가 아니라면 그 문법을 배우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표현법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당신을 이해시키십니다.

 

가족관계를 신앙의 순종과 주님과의 계약에 순종하는 분위기 안에 놓으라는 초대는 그 관계들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 반대로 그 관계를 보호하고, 이기주의로부터 그 관계를 풀어줍니다. 그리고 그 관계가 손상되지 않도록 지켜주며 결코 죽지 않는 생명을 위한 구원으로 그 관계를 가져갑니다.

 

인간관계를 통한 한 가정의 스타일의 순환은 국민을 위한 축복입니다. 그것은 땅 위에 희망을 되돌려줍니다. 가족 간의 애정이 복음의 증거를 향해 돌아서는 데 투신할 때 그 애정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이 만나셨던 남자들과 여자들, 어린이를 위해 행하셨던 것과 같은, 하느님께서 역사 안에서 성취하시는 그분의 업적을 손으로 만질 수 있게 만듭니다. 다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버려진 아기의 절망 앞에서 기적적으로 지어 보이는 단 하나의 미소는, 우리에게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행하심을 수많은 신학적 학술서보다 더 잘 설명합니다. 자기 자녀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녀를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할 줄 알고 희생할 줄 아는 단 한 사람의 남자, 여자는 우리에게 사랑에 대한 것을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학자보다 더 잘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런 가족의 애정이 있는 곳에서 말보다 더 웅변적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런 행동이 생겨납니다. 사랑의 행동, 이는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가정은 세상의 연출과 감독을 하느님과 맺은 남자와 여자의 계약에 다시 맡겨드립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 증거의 발전에 대해 생각하십시오. 역사의 방향타, 사회의 방향타, 경제와 정치의 방향타가 마침내 오고 있는 세대를 향한 눈길로 그 방향타를 잘 조작하고 관리하도록 남자와 여자의 계약에 맡겨지게 되었음을 상상해 봅시다. 아마도 땅, , 경제, 노동의 주제들은 매우 다른 음악들을 연주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교회에서 시작해 가정이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주인공이 되게 한다면 우리는 카나의 혼인잔치의 좋은 포도주처럼 될 것이며 하느님의 누룩처럼 부풀리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하느님과 맺은 가정의 계약은 오늘날 현대 도시의 공동체적인 사막화를 증명하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우리들의 도시는 사랑의 결핍, 미소의 결핍으로 인해 사막화되었습니다. 수많은 즐길 거리들, 시간을 허비하고 그저 웃고 즐기는 수많은 일들이 있지만 사랑은 없습니다. 한 가정의 미소는 이런 우리 도시들의 사막화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가정의 사랑의 승리입니다. 그 어떤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공학기술도 이 가정의 기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바벨탑의 건설 계획은 생명 없는 마천루를 건설합니다. 반면에 하느님의 성령께서는 사막에 꽃을 피우게 합니다(이사 32,15 참조). 우리는 대중의 열려진 공간과 집들, 가정의 사랑을 향해 열려진 공간을 새롭게 자주 찾아다니기 위해 엘리트들이 장막을 친 방에서, 테러의 방에서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축성된 사람들에게 부여되었고 혼인성사에 선사된 카리스마들의 친교는 교회를 하느님과의 만남을 위해 완전히 가족적인 장소로 변화시키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이 길 위로 가도록 합시다.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합시다. 사랑으로 가득한 가정이 있는 곳에서 그 가정은 그 사랑의 증거를 통해 도시 전체의 심장을 뜨겁게 할 수 있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하느님의 시각을 알아보고 그것을 잘 유지할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인 가정 안에 기쁨에 찬 소란스러움을 가져오실 것이며, 인간의 도시는 우울함(불황, 저기압, 의기소침)에서 빠져나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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